"나도 똑같은 눈빛인지 모른다, 라고 미레이는 생각했다. 범인이 자백을 했고 이제 사건의 진상은 다 밝혀졌다고 모두들 말한다. 그리고 그 진상을 바탕으로 재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진상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이 세상에 어머니와 자신뿐이라고 미레이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또 있었다. 가해자의 가족도 역시 이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도쿄 해안 도로변에 불법 주차된 차 안에서 흉기에 찔린 사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정의로운 국선 변호인으로 명망이 높던 변호사 시라이시 겐스케. 주위 인물 모두가 그 변호사에게 원한을 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증언하면서 수사는 난항이 예상되지만, 갑작스럽게 한 남자가 자백하며 사건은 해결된다. 

남자는 이어 33년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금융업자 살해 사건’의 진범이 바로 자신이라고 밝히며 경찰을 충격에 빠뜨린다.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그 사건 당시 체포되었던 용의자는 결백을 증명하고자 오래전 유치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였다.

두툼한 분량에도 하루 이틀 만에 독파했다는 현지 독자들의 앞선 리뷰가 증명하듯이, 소설은 33년의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두 개의 살인 사건과, 이에 얽히는 인물들이 저마다 진실을 좇아가는 장대한 이야기를 탄탄한 틀 안에서 흡인력 있게 풀어낸다. 

나아가 공소시효 폐지의 소급 적용 문제, 형사재판 피해자 참여제도, SNS 시대에 더욱 논란이 되는 범죄자와 그 가족에 대한 신상 털기나, 공판 절차의 허점 등 굵직한 사회적 논의들을 아우르면서도 추리소설 본연의 재미를 잃지 않으며 차곡차곡 서사를 쌓아나가 놀라운 결말에 다다르는 데는 거장의 노련함이 물씬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기저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해온 작가가 전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슴 뭉클한 드라마가 녹아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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