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나라에서 1등으로 살았다. 그러나 막상 민사고에 가보니 부질없었다. 1등만 모인 1등 학교에서도 1등은 결국 한명뿐이다. 그제야 ‘공부는 경쟁’이라는 강박관념에서 탈출했다. 내가 선택한 역사와 음악 두 분야 모두 줄세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독창성과 설득력이 관건이었다. 인문학과 예술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자 성대 앞 사회과학서점 ‘풀무질’ 대표인 전범선이 첫 산문집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를 출간했다. 2019년 초, 전범선은 폐업 위기를 맞은 33년 된 책방 ‘풀무질’을 인수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왜 빚더미에 쌓인, 쓰러져가는 책방을 이어받기로 결심한 걸까.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한 저자는 컬럼비아 로스쿨에 합격, 한때 국제변호사를 꿈꾸었다. 하지만 로스쿨에 입학하지 않고 현재 해방촌에 살며 낮에는 풀무질에서 글을 쓰고, 밤에는 로큰롤을 연주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집필했다. 책은 대한민국을 벗어나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역설적으로 자신의 뿌리와 자리를 찾아가는 저자의 여정을 담았다. 그는 왜 로스쿨 대신 로큰롤을, 옥스퍼드 대신 해방촌을 선택한 걸까?

저자는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며 난생 처음 철저하게 경계인으로 살았다. 이방인과 소수자로 살며 하도 눈치를 봤더니 별로 남 신경을 안 쓰게 됐다. 덕분에 한결 자유로워졌다. 눈치를 덜 보니,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책방 ‘풀무질’ 주인, 출판사 ‘두루미’ 대표, 밴드 ‘양반들’ 보컬, 전 채식 레스토랑 ‘소식’ 공동대표, ‘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 칼럼니스트 등. 벌여놓은 일이 많아 불안하기도 하지만 삶이 만족스러운 이유다.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있지는 않지만 휘뚜루마뚜루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이유다. 그는 지금, 남의 눈치 안 보고 로큰롤을 연주하고,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로 행복하게 산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휘뚜루마뚜루: 나의 뿌리를 찾아서'는 늘 1등으로만 살았던 저자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다는 고등학교에 입학, 오히려 ‘공부는 경쟁’이라는 강박관념에서 탈피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후 미국과 영국으로 이어지는 유학길에서 어니스트 사토우, 호모 헐버트, 토머스 페인의 사상과 철학을 읽고 공부하며 비로소 대한민국의 뿌리와 나의 뿌리를 이해하게 된다. ‘다트머스맨’, ‘런던의 조선인’, ‘옥스퍼드 양반들’, ‘꿈은 동사, 자유는 부사’로 이어지는 글은 저자가 자아를 찾고 나와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이 시절 동안 저자는 인종과 성에 관한 온갖 편견과 고정관념을 부수고, 본인만의 자유를 확립한다.

 -전범선의 '해방촌의 채식주의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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