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찬은(필명)씨의 소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작가 하찬은(필명)
작가 하찬은(필명)

영호의 죽음은 결국 자살로 종결됐다. 나는 영호의 죽음 앞에 서글프게 울던 종현이 마음에 걸려 한동안 종현이에게 전화를 자주 걸었다. 가끔 만나 술도 마셨고, 종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되는 나의 관심이 부담이 됐는지 종현이는 그때는 그냥 감정이 복받쳤던 것 뿐이라며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종현이의 모습은 왠지 불안해 보였다.
*
 오랜만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온전한 휴일을 보냈다.
 마 부장에게 전화가 걸려 온 건 오후 여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TV를 보다 잠이 든 것 같은데 밖은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요. 자다 깨서 그래요. 무슨 일이세요?”
 “미안해, 휴일인줄 알면서도 딱히 연락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서. 혹시 시간 되면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
 “네?”
 “오늘 와이프하고 애가 한국에 온다고 했는데. 그런데 내가 지금 사장님 호출 때문에 공항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야. 내가 전화번호 문자로 남겨놓을 테니까 공항으로 나가 줄 수 있어? 아마 짐이 많을 거야. 미안해.”
 “아니, 그 인간은 왜 휴일까지 사람을 불러내고 그런데요?”
 “운전기사가 사표를 쓰고 나갔다나봐. 오늘만 운전을 해달라고 해서.”
 나는 화가 났다. 휴일에 막무가내로 사람을 불러내는 사장도 어이가 없었지만, 사장 말이라면 거절을 못하는 마 부장의 우유부단한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마 부장 성격상 나에게 부탁 전화를 하기까지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했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 부장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어쨌든 알았어요. 부장님.”
 나는 마 부장이 보내준 전화번호로 수없이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기계음뿐이었다. 마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마 부장도 받지 않았다. 사장과 함께 있어 전화를 못 받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한참 동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일단 공항으로 향했다. 마 부장의 부탁인데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공항에 막 도착할 무렵 마 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야?”
 마 부장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나는 혹시나 나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인가 싶어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도 연락이 안돼서 일단 공항으로 왔어요. 혹시 몇 시 비행기인지 아세요?”
 마 부장은 말이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마 부장은 울음을 삼키며 말을 꺼냈다.
 “다 끝났어.”
 나는 마 부장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네? 무슨 말이에요?”
 마 부장은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을 토해내며 소리를 질렀다.   
 “다 끝났다고, 이제 모든 게 끝났어. 마누라하고 애는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을 거야. 이제 내가 보내주는 돈도 필요 없대. 내가 몇 년을, 몇 년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마 부장은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침착하라며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마 부장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나는 마 부장에게 위치를 물었다.
 “부장님. 지금 어디세요? 제가 갈께요. 만나서 얘기해요.”
 마 부장이 고래고래 지르는 목소리 너머로 차들이 주행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속 주행을 하는 소리와 거친 바람 소리. 도심 지역이 아닌 고속도로나 순환도로 같았다. 나는 다시 마 부장을 달래며 말했다.
 “부장님. 주변에 뭐가 보이는지 말해보세요.”
 한참 동안 소리를 지르던 마 부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잠시 뒤 말했다. 울음은 여전히 묻어 있었다.
 “와이프는 내 딸과 미국에서 살겠대. 다시는 오지 않겠대. 난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갈 때가 없어졌어.”
 전화기가 꺼졌다. 나는 마 부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차가운 기계음만 들렸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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