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달리기가 상쾌한 시작이라면 밤의 뜀박질은 처연한 마무리다. 아침 달리기가 생기로운 계절의 소리를 듣는 일이라면 밤의 뜀박질은 내 발자국과 숨소리로만 공간을 채우는 경험이다. 아침 달리기가 활기 넘치는 바깥세상과의 만남이라면 밤의 뜀박질은 텅 빈 길 위에서 스스로와 나누는 깊은 대화다."

 

달리기는 1인분의 운동이다. 축구의 ‘골’처럼 극적인 순간이 있다거나 농구처럼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지도 않는다. 나 홀로 시작하고 끝맺는 일이다 보니 팀플레이의 끈끈한 맛도 없다. 혼자 하는 운동들, 가령 요가나 수영과 비교해봐도 뭔가 머쓱해진다. 요가처럼 수많은 자세들을 하나하나 내 것으로 만드는 재미도, 수영의 다양한 영법을 마스터해가는 과정도 달리기와는 조금 먼 얘기다. 러닝의 꽃이라 하면 마라톤인데 그조차도 언뜻 보기엔 몇 시간 동안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달리는가.

달리기의 가장 큰 매력은 무한한 확장에 있다.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어디로든 내달릴 수 있다. 그때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특히 자연이 빚는 삶의 생기에 감각은 한껏 예민해진다. 해가 어제보다 얼마나 짧아졌는지, 집 앞 숲길의 잎들이 얼마나 무성해졌는지, 나무에 열매는 맺혔는지, 바람이 새롭게 다가오는 계절을 얼마나 머금고 있는지. 일상에서는 기껏해야 출퇴근 시간에나 마주치고, 그마저도 쫓기듯 스쳐 보내는 풍경들이 달리는 순간만큼은 있는 그대로 나를 관통한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비운 생각의 틈에서 나의 삶을 조용히 감싸고 있던 것들은 엑스트라에서 주연으로 올라선다.

이렇게 자연의 꿈틀거림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매번 생경하다. 아마 그건 미동 없는 내 일상과 대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가던 마음이 달리며 조우하는 자연의 숨소리 덕분에 말랑해진다. 덩달아 내 안 어딘가에 숨어 있던 생기 역시 다시금 호흡하며 살아나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오늘 밤 첫 달리기를 시도한다면 그건 실패를 자초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예견된 실패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해도 좋다. 약간의 뻔뻔함은 도전하려는 마음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 방패를 앞세워 슬금슬금 전진하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닿는다. 달리기란 원래 그런 운동이니까.

-김상민의 '아무튼, 달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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