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서비스’로 주지 않고 제대로 돈을 받는 메뉴로 정해 나름 먹을 만한 군만두를 내는 중국집이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집의 군만두도 구워내는 게 아니라 기름에 튀겨 내는 게 대부분이라, 언제부턴가 한국의 군만두는 기름으로 튀겨내는 튀김만두로 정착을 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래서 더 맛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진화이자 긍정적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무래도 이게 일손을 덜기 위한 그리고 떨어지는 맛을 감추기 위한 술수에서 나온 퇴행의 결과로 보인다."

 

이 책에서는 영화에 나온 ‘그 음식’이 맛있는 이유를 영화적 맥락과 인물의 성격, 요리의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을 통해 막국수의 시원한 맛을 알아보고, 굶주림을 덜어주던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와 고도 성장기로 이어지는 메밀의 변신, 구황음식에서 별미의 상징, 웰빙의 일상음식으로 진화하는 메밀 요리를 통해 서민들의 식생활도 살펴본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만두 삼국지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지는지도 알아보고,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는 중국 음식이 미국으로 건너가 야근하며 고픈 배나 채우는 배달 음식이 된 사연도 영화 속 인물과 함께 담았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해리슨 포드가 먹던 포장마차의 아시안 누들은 30년이 지난 지금 전혀 낯설지 않은 현실 풍경이 되었다. 역사적 사실이나 설명으로는 느낄 수 없는 음식의 맛과 사연을 영화 속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더욱 애틋하고 절실하게 실감할 수 있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사설 감옥에 갇혀 군만두만 먹는다. 그것도 십오년이나. 어느 날 갑자기 풀려난 그는 혀가 기억하는 군만두 맛을 되살려 중국집을 찾아 나선다. 중국집 ‘자청룡.’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도 고개를 갸웃하지 않는다. 정말 만두를 그렇게 오래 먹었다면 혀가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보고 며칠 후 서비스로 따라온 군만두를 먹다 보면, '올드보이'의 그 설정이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이 스쳐 간다. 정말 중국집 이름 두 글자와 군만두 맛만으로 중국집을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영화적 개연성은 우리 음식의 현재를 감추고 있다. 바로 ‘영화의 맛’이 음식의 맛과 현실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집이 한 곳에서 십오 년을 영업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십오 년 동안 같은 맛으로 빚어 판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다른 곳에서 사서 조리해 판다면 그 맛은 분명 달라질 게 분명하다. '올드보이'에서 만들어낸 영화적 설정의 만두맛을 실제로는 느끼기 쉽지 않은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올드보이'를 재미있게 본 사람에게라면 오대수가 십오년 동안 먹었던 만두의 현실적 의미 또한 흥미롭게 다가갈 것이다.

-이주익 '불현듯, 영화의 맛'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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