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의 하루한줄] 21세기를 살아낸 여성들, 그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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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영의 하루한줄] 21세기를 살아낸 여성들, 그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
  • 강선영 기자
  • 승인 2020.07.23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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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그 아주머니들보다 나이가 많은데, 나는 영영 음식을 못하는 사람으로 남았으니 비척거리는 젊은이가 찾아와도 먹일 것이 없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손맛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무것도 당연히 솟아나진 않는구나 싶고 나는 나대로 젊은이들에게 할 몫을 한 것이면 좋겠다.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 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독창적인 목소리와 세계관으로 구축한 SF소설부터 우리 시대의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들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로 우리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던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경미 감독, 정유미 주연)과, SM에서 제작중인 케이팝 드라마 '일루미네이션'의 각본을 집필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그가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로 돌아왔다. 

한국과 미국에 나뉘어 살고 있는 한 가족이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다는 다소 엉뚱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시선으로부터,'는, 현대사의 비극과 이 시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세계의 부조리를 관통하며 나아간다. 미술가이자 작가이며 시대를 앞서간 어른이었던 심시선. 그녀가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이 독특한 가계의 구성원들은 하와이에서 그녀를 기리며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간다. 

정세랑이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시선으로부터,'는 한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올곧고 따스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작품이다. 데뷔 10년,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내면서도 우리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그가, 사랑스러운 소설을 쓰는 작가에서 이제는 사랑을 행사하는 작가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시선으로부터,'는 시대의 폭력과 억압 앞에서 순종하지 않았던 심시선과 그에게서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삼대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 명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심시선에게서 뻗어나온 여성들의 삶은 우리에게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테러에 움츠러들었던 화수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한다. 해림은 친구에게 가해진 인종차별 발언에 대신 화를 내다가 괴롭힘을 당했지만 후회하거나 굴하지 않는다. 경아는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뒤따라오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에서


 

강선영 기자 ksy@newsn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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