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의 대명사'로 일컫어지는 대전형무소 재소자들의 진실이 드러난다. 
박만순 씨는 2018년 충북지역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책 '기억전쟁'을 출간한 이후 '골령골의 기억전쟁'을 출간했다.
 
'골령골의 기억전쟁'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중에서도 ‘민간인 학살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대전형무소 재소자들에 대한 진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시 대전형무소는 전국 주요 정치·사상범의 집결지였다. 

제주 4.3사건 관련자, 여순사건 관련자들 상당수가 이곳에 수감돼 있었고,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검거된 거물 정치인 이관술과 송언필도 이곳에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한 달여 동안 5000~7000여 명이 집단 학살됐다는 사실이 보도된바 있지만, 피해자 개인의 삶과 유족들의 삶까지 담긴 기록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유형별로 피해자들의 자료를 수집하고, 50여 명의 유가족 및 사건 목격자들을 수소문해 찾아다니며 인터뷰했다. 기사는 2019년 4월부터 '오마이뉴스'에 연재됐으며, 이후 원고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골령골의 기억전쟁'으로 다시 태어났다.  

'골령골의 기억전쟁'은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서는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부역 혐의자를 다루었다. 제2부에서는 4.3사건 관련자를, 제3부에서는 여순사건 관련자를 다루었고, 제4부에서는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과 그 밖에 잊힐 뻔했던 학살사건 사례를 다루었다. 특히 ‘가해자’ 부분에서 골령골 학살 현장을 총 지휘한 심용현 중위의 행적을 밝힌 부분은 읽을 때마다 충격적이다.​ 

“어이 이관술, 죽는 마당에 ‘대한민국 만세’나 불러봐.”

“대한민국 만세는 모르겠고 조선민족 만세를 부르겠소.”

하지만 이관술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대기하고 있던 사수들의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청년방위대원들이 2인 1조가 되어 이관술의 시체를 큰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이봐, 특경대장 자네는 그쪽 구덩이에 가면서 확인 사살해.”

그러면서 심 중위는 반대편 구덩이를 가면서 확인 사살했다.​ 

당시 대전형무소 특경대장 이준영의 증언을 토대로 재현한 현장 묘사다. 물론 여러 목격자의 증언이 일치한다. 그는 학살 명령에 주저하는 사수들에게 위협사격을 가할 만큼 뛰어난 ‘국가폭력 관리 능력’을 발휘했다. 저자 박만순 씨는, 그렇게 학살에 가담한 사수들이 죄의식으로 괴로운 삶을 살았던 반면 심용현은 군인으로서 승승장구했고 예편해서는 성신학원 이사장을 지냈으며, 성신여대 교정에 흉상이 건립돼 있음을 지적한다.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것, 그것이 이 책을 펴내는 이유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골령골의 기억전쟁'은 죽은 사람들과 죽지 못해 살아온 유족들의 이야기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체포와 죽음으로 삶이 꺾여버린 피해자, '빨갱이 가족'이란 굴레를 쓰고 연좌제의 고통 속에 살아온 유족들의 삶과 천신만고 끝에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재구성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삼촌이며 형이며 동생이었던 사람들. 그들은 왜 영문도 모르고 죽어야 했는지, 누가 죽였는지, 얼마나 죽였는지, 기억하고 질문하고 규명하지 않는다면,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목숨을 이대로 어둠 속에 방치한다면 우리는 이 비극으로부터 끝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간절하게 전하고 있다.

총성과 포성이 멎었다고 전쟁이 끝난 건 아니다. 아직도 분단은 현실이고, 현실은 안개 속 진흙탕이다.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갈등을 조장해 전쟁을 연장하려는 게 아니라 전쟁을 끝내려는 몸부림이다.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고 싶어서, 진실에 가까이 가려는 것이다. '골령골의 기억전쟁'은 학살 가해자를 밝혀내서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함으로써 민족 공동체의 집단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작업임을 일깨운다. 그래야 용서도 하고 화해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정말 늦기 전에 말이다. ‘기억하는 자만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저자의 외침은 그런 면에서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경구로 다가온다.

저자 박만순 씨는 2002년 창립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아 일했으며, 이후 충북 도내 마을 조사, 문헌자료 수집 및 연구, 구술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충북역사문화연대’와 ‘사단법인 함께사는우리’ 대표를 맡고 있다.​​​​

강선영 기자 ksy@newsnbook.com

저작권자 © 뉴스앤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