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집에 놀러 온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말했다.

"단 둘이 사는데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그렇다. 난 누가 봐도 맥시멀리스트다. 예전에 쓰던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제품이 가진 용도와 디자인에 홀로 열광한다. 수집가의 삶이 궁금하고, 낡은 물건이 지나쳐 왔을 세월의 이야기를 짐작하는 걸 좋아한다.

신현종<br>(조선일보 사진부기자)
신현종
(조선일보 사진부기자)

그런데 어느 때 부턴가 지구의 환경이나 기후 변화의 문제를 맞닥뜨릴 때면 마음이 무겁다. 분리수거 물품을 내 놓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탈 때는 나의 치부를 온 동네에 드러내는 것만 같아 누군가가 이 엘리베이터에 동승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내 양손 가득 움켜 쥔 큰 비닐봉지 안에는 각종 플라스틱과 비닐류, 색색깔의 화려한 음료 캔들이 가득 들어 있다. 살금살금 도둑 걸음으로 재활용품 장에 도착해 품목별로 정리를 하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바로 다큐 '플라스틱 행성'의 이미지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혀 신음하고 있는 지구의 모습. 20세기 기적의 소재라 불리는 플라스틱은 금새 지구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그 점령군의 무서움은 어느 상황에서도 퇴각이 없다는 것이다.

『쓰레기 거절하기』는 '너무 많은 물건으로부터 해방된 어느 가족의 도전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인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은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사는 물리치료사다. 지향점이 같은 남편과 아이 셋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녀는 어느 날 지구를 뒤덮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다큐를 보고 충격을 받은 뒤, 딱 한달만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이 후에는 꾸준히 생활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삶에 도전, 주위에 그 가치를 열심히 알리다 2015년에 정치에 입문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녹색당 의원이다.

산드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행성이 넘쳐나는 쓰레기들로 이미 병들었고, 어느 순간에는 우리가 알던 예전의 자연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현재를 인지하는 모두의 의식은 너무 낮았다. 그래서 더 늦기전에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부터 변해야 겠다고 다짐한다. 우선 자신의 식구들부터 바꿔 보기로 했다. 단 한 달 만이라도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는 것이다.

'플라스틱 없이 살기 프로젝트'는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우선은 지구를 오염시키는 물질이 플라스틱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단은 일상 생활에서 플라스틱의 사용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플라스틱의 대안으로 찾은 유리그릇도 예외 없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패킹이 달려 있었다. 처음 원칙을 세우는 과정에서 100% 플라스틱 없이 살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바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일회용 알루미늄 포장도 플라스틱 포장의 완벽한 대안은 될 수 없었다. 알루미늄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독성 보크사이트 찌꺼기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재생지의 유해물질 오염도 간과할 수 없었다. 이런 여러가지 문제들에까지 관심이 확장되자 산드라는 알았다. 단점이 없는 물질이란 없고,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모든 물건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존의 이 모든 것들을 구매할 경제적 여력이 있고, 많은 영역에서 낭비가 가능할 만큼 상품의 값이 무척 싸고(이것이 바로 플라스틱이 가지는 위대함이다), 그로써 기존의 소비 형태를 바꿀만한 매력이 적다는 것이다. 풍요와 낭비의 연결 고리를 끊어 내야만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있다. 풍요와 낭비가 주는 달콤함을 버려야 하는 것. 그런데 관연 그게 가능할까!

다시 기본 문제로 돌아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현재의 생활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생각을 이렇게 정리하면 아주 간단히 해결책이 나오거나, 현실에서 어떤 상품이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지 판단하는 손쉬운 근거가 된다. 예를들면 키친타월과 화장솜등은 예전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없어도 헝겊이나 천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매번 빨아서 써야하는 수고로움은 기초 요소다.

그렇다고 완벽한 옛날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닐봉투를 쓰고 싶지 않다고 지금의 생활에서 완벽히 비닐을 제거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내 손에 비닐봉투가 들어 왔다면 더 이상 망가져서 쓸 수 없을 만큼 다회를 사용하면 된다.

예전엔 없어도 살 수 있었던 것들이 왜 지금은 꼭 소비해야 하는 것들로 바뀌었을까? 낭비에 대한 즐거움이 갑자기 우리 인간에게 이유도 없이 생겨난 것일까?

쓰레기 거절하기
쓰레기 거절하기

 

저자는 우리 사화가 엄청난 규모의 낭비 사회로 바뀐 것은 개인의 결정보다 훨씬 더 많은 요소들이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재사용 시스템을 촉진하고 고객을 일일이 응대하려면 마트마다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거대 유통업체들의 이익은 줄어들게 된다. 다시 말해 다회용 유리병을 사용하여 제품을 파는 것은 값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음식을 파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유통의 비용이 든다. 일회용 포장 시스템을 활성화하면 상품을 판매하고 난 업체들의 추가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낭비의 일상화'는 어느새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을 유지하는 토대가 되어 버렸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낭비의 일상화'를 몰아내려면 우리 모두 또는 최소한 대부분은 일상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들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처럼 지속적으로 쓰레기를 배출하는 우리의 일상의 패턴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고민하고, 노력하고,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때론 더 많은 돈을 써야만 한다.

저자인 산드라는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만 있다면 모든 노력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한달간 실시해 본 '플라스틱 없이 살기 프로젝트'는 짐작만큼 어렵지 않았고, 그렇게 바뀌어간 그들의 생활은 서서히 가족의 일상이 되어갔다.

산드라의 가족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남들과 달리 노력할 때 주위로 부터 끊임없이 받아 온 질문이 있다. '지금의 풍토에서 당신 한 가족이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얼마만큼 효과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만 그런다고, 나 하나 실천한다고 해서 뭐가 바뀔까'하는 이 질문은 사실 '쓰레기를 줄여 지구를 살리자'는 운동에 관한 가장 근원적인 의문이기도 하다. 산드라 역시 자신의 이러한 작은 실천이 당장 지구의 기후변화를 막을 어떠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는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삶이었다. 소신에 맞는 일을한다는 것 만으로도 삶이 행복해진다는 걸 그녀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 프로젝트'를 통해 배우게 됐다.

지구를 멍들게하는 쓰레기는 플라스틱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산드라는 어느 날 세계에서 생산된 식품의 3분의 1이 쓰레기통에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덤스터 다이빙'이란 용어가 있다. 이는 대형 쓰레기통 안에 뛰어 든다는 의미로, 대형마트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상품 가치를 잃은 음식들을 덤스터에 버린다. 이 덤스터 속에서 아직 충분히 먹을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재활용하자는 운동을 '덤스터 다이빙'이라고 한다. 이런 용어가 생겨날만큼 음식이 낭비되고 버려지는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유럽에서 버려지는 식품의 53퍼센트는 개인의 가정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일반 가정에서 구매한 식품의 4분의 1은 먹지 않고 버리는 것이다. 생선 1킬로그램을 얻기 위해 잡혔다가 죽은 채로 다시 바다에 버려지는 해양 동물은 평균 10킬로그램이나 된다

이런 현상의 주된 원인은 대략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계획적이지 않은 장보기 습관이 그 첫번째고, 둘째는 보기에 예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먹을 수 있는 상품을 버리는 관행이다. 셋째는 유통기한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유통기한은 생산자가 제품의 안전성을 책임지고 보증하는 기간일 뿐 상품의 실질적인 보관 기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잘 활용하면 '공짜 가게'를 통하거나 '푸드 셰어링'을 통해 버려지는 음식의 양을 최소화 할 수 있다. '푸드 셰어링'은 개인이나 상인, 생산자들한테서 남아도는 식품을 무상으로 거두어들여 필요한 이에게 나눠주는 플랫폼을 말한다. "공짜 가게' 역시 필요 없게 된 물품을 누군가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매장을 지칭한다.

의류 영역에서의 낭비 또한 심각하다. 유행에 따라 새로운 옷을 구매하고 멀쩡한 옷을 버리는 습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브랜드들이 매 시즌마다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고 판매가 되지 않는 옷들은 폐기 한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고가의 옷일수록 폐기율도 높다. 팔리지 않은 옷은 쎄일을 통해서라도 보유분을 줄여야하지만, 이런 할인은 브랜드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그런 그들의 선택은 남은 물량을 전량 소각하는 것이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가스의 수치가 엄청나다고 알려져 있지만, 폐기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오염물질들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육류에 대한 지나친 탐닉도 기후 변화에 영향을 준다. 육류를 대량 생산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열대우림을 불태운 뒤 콩을 심는다. 육류의 먹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내뿜는 배기가스도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항공기가 내뿜는 배기가스는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항공기로 인한 대기오염이 중요한것은 그들이 자동차처럼 지상에서 운행되는 것이 아닌 성층권에서 운행되기 때문이다. 성층권에서 배출된 배기가스는 대기 중의 수중기와 결합해 가늘고 긴 꼬리 모양의 비행운을 형성하고, 그 비행운은 지구에서 방출되는 열을 대기권에 가두기 때문에 지구온난화에 많은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유럽에서 네델란드를 제외하고는 항공기에 쓰이는 제트연료에 세금이 면제 된다.

이처럼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요인들은 너무도 다양하다. 산드라는 "당신 한사람이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지죠?"란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가게를 갈 때는 장바구니와 재료를 담아 올 유리 용기를 반드시 지참하고, 가능한 자전거를 이동 수단으로 삼고, 비행기는 타지 않으려고 애쓰고, 포장이 최소화된 상품을 지향하고, 가전제품은 고쳐 쓸 수 있는 최대치를 사용하려 노력하며, 옷을 아껴입고, 필요한 물품은 중고거래 장터를 이용하여 아직 사용 가능한 물건이 버려지지 않기 위해 주의했다.

산드라는 뭐든 쉽게 사용하고 버리는 우리의 낭비적 소비 습관을 바꾸기 위해 주위에 있는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그 가치를 되새겼다.

다소 불편하지만 '포장 없는 가게'는 우리가 나아가야할 지향점이다. '포장 없는 가게'는 직접 가져간 용기나 봉지에 그램 단위로 담아 꼭 필요한 양만큼 살 수 있고, 제품도 미리 일정한 용량으로 포장 된 상품이 아닌 손님이 원하는 양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곳을 말한다. 개별 포장이나 편리하게 소분이 되어 있지 않은 방식은, 어쩌면 저울에 구입한 용량을 달아 구매하는 아주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된다. 현재의 매장들이 이런 형태로 바뀌려면 손님 한사람 한사람을 직접 응대해야 하고 판매에 드는 시간도 늘어날 수 밖에 없어 더 많은 제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산드라가 제시한 또 하나의 대안은 '공짜가게'를 여는 것이다. 필요했으나 누군가에게 용도를 다한 것들을 또 다른 필요한 이를 위하여 나누는 것이다. 가전제품, 옷, 남아도는 식재료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든 물건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그들이 쓰임이 다할 때까지 고쳐 쓰고 아끼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할 일 이다.

현재의 넘쳐나는 일회용 용기 사용을 자제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일회용 식품 포장에 용기 보증금을 포함 시켜야 한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상품이 많이 배출하는 상품보다 가격이 싸게 책정되어야 한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요소를 지닌 식품들은 그만큼의 환경부담금을 더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모든 것들을 줄이기 위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절제된 삶을 살아 왔다. 그녀가 이토록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건 기후변화가 우리의 생사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우리가 스스로를 자멸시키는 기후변화를 더 악화시키지 않을 해결책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어떤 특정한 물질을 기피하는데 있지 않다. 지금 과잉으로 낭비되고 있는 모든 형태의 물질과 에너지를 아끼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우리가 오늘 아무런 노력 없이 어제처럼 살아간다면 지구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인간을 밀어 낼지도 모른다. 지구는 환경과 생물로 이루어진 하나의 유기체라는 '가이아 이론'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구가 스스로 정화작용을 하던, 플라스틱 쓰레기와 기후변화로 그 순기능을 잃던, 우리의 선택은 한가지 일수밖에 없다. 지금 멈추고 바뀌지 않으면 정말 너무 늦어 버릴지도 모른다.

산드라의 많은 해답이 경제 산업의 기반을 뒤흔드는 잘못된 것이라고 해도, 오늘 우리는 그녀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가지 않으면 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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