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허태연 '플라멩코 추는 남자'

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중 유일하게 은희경, 전성태, 이기호, 편혜영, 백가흠 전원의 지지를 얻어낸 작품. 

먼지가 소복이 쌓인 봄날의 작업장, 그곳에 주차돼 있는 거대한 굴착기 앞에서 주인공 허남훈이 한 청년을 만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26년 동안 굴착기를 운전해온 남훈 씨는 은퇴를 결심한 뒤 자신의 중고 굴착기를 거래하기 위해 그곳에서 청년을 만났다. 권위적인 모습의 전형적 꼰대인 남훈 씨는 자신의 굴착기 자랑만 잔뜩 늘어놓은 뒤 이것저것 캐물으며 청년을 괴롭힌다. 당연히 청년과의 거래는 불발되고 이후 남훈 씨는 몇 명의 거래자를 더 만나지만 모두 불발된다. 

고리타분한 자신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훈 씨는 은퇴를 결심한 뒤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한 과제들을 마련한다. 스스로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것은 어쩌면 이것이 남은 생애 동안 남훈 씨가 이루어야 할 최종 목표일지 모른다. 일종의 버킷 리스트이기도 한 남훈 씨의 과제는 대부분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 같은 소박한 것들이지만 ‘스페인어 배우기’나 ‘플라멩코 배우기’같이 67세 노인에게는 제법 험난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와 플라멩코 강사, 그리고 결국 굴착기를 임대해 간 청년과의 만남 속에서 남훈 씨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다. 남훈 씨는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마지막 과제를 마련한다. 그것은 ‘진짜 가족’을 찾기 위한 과제이자, 은퇴 전에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여겼던 과제다. 67세 남훈 씨는 과연 자신의 과제를 모두 수행할 수 있을까? 가족이 모르고 있던 또 다른 가족에 대한 문제를 남훈 씨는 결국 해결할 수 있을까? 

 

2. 디파 아나파라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은 인도 빈민가에서 잇따르는 아동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어린이 탐정단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인도 출신 영국 작가인 디파 아나파라의 데뷔작으로 저자는 뭄바이와 델리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당시의 경험과 인도에서 나고 자란 기억을 작품에 담아냈다. 저자는 집필 중이던 이 작품의 앞부분만으로 브리드포트 페기채프먼-앤드루스 상과 루시케번디시 소설상, 데버라로저스 재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장편으로 완성한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이 2021년 에드거 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을 아우르는 영미 문단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빈민가에 사는 아홉 살 소년 자이는 공부보다 '경찰 순찰대'나 '범죄의 도시'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이다. 자이는 오랜 수사극 시청으로 다져졌다고 믿는 자신의 추리력을 빈민가 아동 연속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데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늘 서로 투덕거리는 단짝 친구인 파리, 파이즈와 의기투합하여 탐정단을 꾸린다. 자이 탐정단, 일명 ‘보라선 정령 순찰대’의 탄생이다.

자이는 실종 아동의 가족 및 주변 사람들을 통해 탐문하는 것은 물론, 수사를 위해 값비싼 보라선 전철을 타려고 찻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여러모로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실종된 아이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른들이 외면하는 동안 아이들은 계속해서 실종되고, 어느덧 위험은 자이와 친구들에게까지 닥쳐오는데……. 보라선 정령 순찰대는 과연 텔레비전 드라마 속 ‘경찰 순찰대’처럼 사건을 멋지게 해결할 수 있을까. 

 

3. 박형남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납득이 어려운 재판 결과가 나올 때마다 시민들은 분노한다. 판사들은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에게 왜 상식적인 판결을 내리지 않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판사들의 관점은 왜 이렇게도 다를까? 

법정의 울타리는 너무 높아 보이고 판사들은 그 안에서 자기들만 아는 언어로 판결문을 쓰고 재판을 하는 것만 같다. 갈수록 법에 대한 의식이 예민해지는 지금, 시민들은 정말 궁금하다. 판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재판을 하는지. 만민에게 평등하다는 법률이 왜 불공평하게 적용되는 것 같은지.

30여 년간 수없이 재판을 해왔고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민사항고부 재판장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 박형남 판사는 이런 시민들의 의문에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법의 주체인 시민이 법과 그 대리인인 판사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불신만 더욱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많은 재판을 떠안아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울타리에 갇혀 시민과 소통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판사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커져만 갔다. 재판을 통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법률의 존재이유는 무엇인지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한 채, 법률 관료로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염려했다.

이 책은 ‘판사에게는 당연하지만 시민에게는 낯선 법의 진심’을 다룬다. 법에도 진심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을 향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을 두루 거치며 바라본 재판의 풍경, 재판 과정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의 얼굴, 법률가로서 읽고 쓰고 생각해온 법의 인문학, 특별해 보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판사의 일상까지 보통의 시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법정의 뒷모습을 차분하고 성실하게 풀어준다. 또 책 마지막에는 박형남 판사와 법철학자 김현섭 교수의 대담을 실었다. 억울한 사람의 눈물에 공감하며 보다 엄정하면서도 인간적인 재판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판사의 냉철한 정신과 따뜻한 마음을, 더 나아가 법의 진심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4. 샘 킨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우리가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까?’ 정재승 교수가 '알쓸신잡'에서 던진 의문이다. 이는 바꿔 말해 이순신 장군이 내쉬어 대기 중에 퍼진 공기 분자가 얼마큼 우리 폐 속에 들어올까 하는 물음이다.
 
이 책의 저자 샘 킨은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의 네 번째 책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의 문을 연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치며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우리가 들이마실 수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놀랍게도 우리는 매번 숨을 들이쉴 때마다 카이사르의 숨결 일부를 마시고 있으며 이것은 이순신 장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때 역사적 인물의 폐 속에서 춤추던 분자들이 그토록 먼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폐 속에서도 춤추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들이마시는 모든 종류의 기체에 얽힌 기묘하고도 흥미진진한 과학과 때로는 비극적이고 때로는 익살맞은 인간의 이야기를 특유의 화려한 입담으로 박진감 넘치게 풀어낸다. 산소를 이용해 대담한 강도 짓을 벌인 도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가 하면 의학 역사상 처음으로 가스 마취제를 도입한 수술 장면을 보여준다. 이어 아인슈타인이 안전한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분투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증기 기관이 수증기를 내뿜으며 산업 혁명을 추동한 경이로운 역사와 핵실험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능 기체가 대기를 오염시킨 비극적인 사건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풀어낸다.

또 저자는 자칫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을 역사적 인물들의 흥미진진한 일화와 버무려 먹기 좋게 탈바꿈시킨다. 이를테면 유독 가스 대기에 관한 내용은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기체로 변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괴짜 노인의 일화를 통해 스릴 넘치게 풀어내고, 질소의 과학적 사실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화학 반응법을 발명한 동시에 섬뜩한 독가스 무기를 만든 화학자 프리츠 하버의 이야기와 연결시켜 과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인다.

저작권자 © 뉴스앤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