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유정이 돌아왔다
상태바
[기고] 정유정이 돌아왔다
  • 뉴스앤북
  • 승인 2021.10.10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완전한 행복'을 읽고, 저자 정유정
신현종 조선일보 사진기자

정유정이 돌아왔다.

정유정. 어떠한 수식어도 필요없다. 이름 자체가 브랜드다. 압도적인 서사로 독자를 순식간에 소설 속으로 빨아들인다. 책을 펼친 독자를 단번에 멱살을 잡아 끌듯 소설속으로 밀어 부칠 수 있다는 것은 작가가 가지는 최고의 재능이다.

성향이 비슷한 사회파 미스터리 거장 미야베 미유키 조차도 소설을 덮는 마지막 장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키진 못했다. 정유정의 글에는 책을 덮을 때까지 독자를 다른 세상에 가둬 놓는 강한 힘이 있다. 독자를 조련할 매서운 채찍이 글안에 담겨 있다.

신현종<br>(조선일보 사진부기자)
신현종
(조선일보 사진부기자)

소설은 반달 늪 근처 외진 농가에서 시작된다. 그 집에는 유치원생인 지유와 그녀의 엄마가 있다. 엄마는 주방에서 열심히 오리의 먹이를 만들고 있다. 기르는 오리가 아닌 야생의 오리들을 위한 것이다. 엄마는 중식도, 뼈칼, 회칼 등 여러 종류의 칼을 사용하여 돼지고기의 뼈를 세심히 바른 후, 큰 찜기에 삶는다. 이렇게 잘 삶아진 고기는 다시 민서기에 간다. 소세지를 만들 때 쓰는 기계다. 집중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손가락도 함께 갈리기 때문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오리먹이를 만드는 엄마는 늘 예민하다. 완성된 먹이는 무게가 상당하기에 수레에 담아 옮긴다. 습지는 넓고, 오리 먹이는 무겁고, 반달늪으로 가는 길은 머니까 반드시 수레가 필요하다. 그렇게 부드럽게 다져진 고기는 수레에 담겨 늪으로 곤두박질 친다. 오리들은 고기 냄새를 맡고 순식간에 먹이 근처로 모여든다. 그리곤 그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지유는 유치원 수업시간에 동물 친구들에 대해 배우다가 오리가 좋아하는 먹이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오리고기의 먹이라면 지유의 전문분야다. 지유는 오리들이 다진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선생님의 질문에 '돼지고기'라고 답했다가 모두의 웃음을 산다. 오리가 돼지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그들이 지유의 바른 답을 놀린 것이다. 그날 하원 후 울적해 있는 지유에게 엄마는 말했다.

"개네들이 몰라서 그래. 그건 반달늪 오리들의 비밀이거든."

비밀. 엄마의 대답을 들은 지유는 그제서야 자신을 비웃은 사람들에 대한 분이 조금은 풀렸다. 엄마와 나만의 비밀.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밀을 알고 있는 자보다 결코 우위에 있을 수 없다. 이날 지유는 비밀이 하나 더 늘었다. 비밀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되는 거'였다. 지유는 어려서부터 비밀의 무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오리고기의 먹이가 새로운 비밀의 영역에 들어왔다. 지유는 이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너무도 많았다.

반달늪에는 오리들이 많다. 청둥오리들이 대다수지만 지유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다른 오리였다. 되강오리. 가을부터 겨울까지 우리나라에 머무르는 철새다. 그런데 여느 오리와는 달리 되강오리는 우는 소리가 특이했다. 지유는 되강오리의 울음 소리에 대해 따로 살고있는 아빠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이상한 놈이에요. 어떤 땐 귀신처럼 울고, 어떤 땐 매맞는 아이처럼 비명을 질러요."

귀신같이, 비명을 지르듯 우는 되강오리는 반달늪 주위에 머무르며 지유의 불안한 밤을 함께 보낸다.

작가는 도입부에서부터 독자가 옴짝달짝 못하도록 여러가지 복선을 깔아 놓았다. 늪, 다양한 식도, 발려지는 고기, 대형 찜기, 민서기, 매맞는 아이처럼 우는 되강오리, 그리고 어린 지유의 많은 비밀과 쉬이 잠들지 못하는 스산한 밤들에 대해서...... 도입부에서 부터 이렇게 읽는 사람의 신경을 있는대로 긁어 놓으니 독자들은 도저히 한 눈을 팔 재간이 없다.

완전한 행복
완전한 행복

 

<완전한 행복>은 〈7년의 밤〉, 〈28〉, 〈종의기원〉을 잇는 완벽한 정유정 월드의 종착역이다. 사실 이 책이 나오기 전 작가의 전작 〈진이, 지니〉를 읽고는 생각이 많았다. 이전의 소설들처럼 흥미롭지 않았다. 정유정 작가 특유의 단단함이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 번 신작을 바로 구매하진 못했다. 보증수표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었던 것이다.

대담집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에서 작가는 '독자를 홀려서 허구라는 낯설고 의심쩍은 세상으로 끌어들이려면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 했다.

「나는 독자가 내 소설 안에서 온갖 정서적 격량과 만나기를 원한다. 기진맥진해서 드러누워버릴 만큼 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길 원한다... 소설이라는 이야기 형식 안에서 안전하게 거리를 두고 겪는 감정의 경험들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키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또한, 독자가 주인공과 함께 절정까지 내달리기를 원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절정에는 이야기의 영혼, 즉 작가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숨어 있다. "나는 세계를, 삶을, 인간을, 이렇게 바라본다"라고. 바꿔 말하면 작가는 이 메시지를 절정부에 숨겨 놓아야 한다.」

맞다. 우리는 늘 작가가 깔아 놓은 덫에 발을 디디게 된다. 덫에 걸려 옴싹달싹 할 수 없는 그 옭죄는 긴장감을 우리는 사랑한다. 전작 <진이, 지니>를 읽을 때 걸은 길이 곧게 펼쳐진 아스팔트라면, <완전한 행복>에서의 길은 음슾하고도 어두운 질척한 늪지대였다.

이건 온전한 사견이지만 <완전한 행복>이라는 제목도, '행복은 덧셈이 아닌 뺄셈이기에, 완전히 행복해 질때가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 버리는 이야기'라는 홍보 문구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엄마, 아빠, 오리를 안은 아이가 등장하는 책표지 역시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표현하기엔 너무 단란하다. '반달늪'이 라는 멋진 장소가 등장하는 소설의 배경을 잘 살리지 못한 느낌이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 다시 정유정만의 세계에 대해 논하자면 그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언제나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다. 일반적인 현실속에서 살인이란 정말 접하기 어려운 극단의 분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건 그 결과를 있게 하는 인과의 과정에 있다. 정유정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인간성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도덕성을 표상하지는 않는다"고. 맞다. 우리 모두에게는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지만 늘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 다만 정당한 도덕성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 남기위해 자신의 분노를 억눌러야 하는 이유를 잘 찾아 낸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의 결핍은 중요하다.

「주인공은 욕망을 가져야 한다. 외적 욕망(드러난 욕망)과 내적 욕망(숨겨진 욕망) 모두 가져야 한다. 결핍없이 자라 원만한 성격과 욕망 없는 내면을 가진 인물은 결혼 상대자로는 적합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으로는 아니다. 삶에 만족하는 자가 무엇을 간절하고 절박하게 원하고 성취하려 들겠는가. 무엇을 위해 자기 삶을 걸 수 있겠는가. 결핍이 없다는 건 소설 주인공으로선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주인공의 결핍이 클수록 연관되는 사건의 강도는 강할 수 밖에 없다.

피로물든 욕조 옆에서 얼굴에 핏물을 뒤집어 쓰고 손도끼칼을 들고있는 엄마, 욕조 밖으로 축 늘어진 팔과 경련하듯 발가락만을 까딱거리고 있는 아빠, 그 모든것을 보았지만 자신의 기억을 왜곡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어린 지유의 고통스런 밤은, 이야기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소설 초반에 이 모든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극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스릴러 장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엔 등장인물들 각자의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다.

'완전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자녀가 없고, 반려자가 없고, 모두가 말하는 따뜻한 가정이 아니었어도 우리는 완전한 행복을 누린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완전한 행복'이란 이 모든게 갖춰져 있는 거라 생각했던 어느 불행한 여자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뉴스앤북 webmaster@newsnbook.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