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실과 오락의 관계 '왕과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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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실과 오락의 관계 '왕과 서커스'
  • 안민하 기자
  • 승인 2021.09.0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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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하 기자

흔히들 기사를 작성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 체크, 다시 말해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자가 쓰는 것은 기사지 픽션이 아니므로 당연한 말이다. 쓰는 이 스스로도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것을, 혹은 진실이 아님을 아는 것을 기사화해 세상에 들이미는 일을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는 어떨까? 진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일이라 해서 무조건적으로 옳을까? 

“내가 하는 일은 타인의 비극을 구경거리로 삼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야만 한다는 철학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왕과 서커스’는 2001년 6월 네팔에서 일어난 한 참극을 취재하는 기자 다치아라이 마치의 여정을 그린 미스터리 소설이다. 네팔 나라얀하티 궁전의 왕실 가족 모임에서 디펜드라 왕세자가 왕과 왕비, 공주 등 여덟 명을 총으로 쏴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마침 네팔에 머물고 있던 마치는 이를 취재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단순히 여행을 위해 네팔에 체류하고 있던 상황에서 다짜고짜 취재에 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팔에 아무런 연줄도 없던 마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정보 수집이었다. 운 좋게도 사건 당일 왕실의 경비를 섰던 라제스와르 준위와 연락이 닿은 마치는 그가 좋은 정보원이 되어줄 것을 기대했지만 마치의 용건을 들은 라제스와르는 인터뷰를 단호히 거절한다. 

“당신은 서커스의 단장이야. 당신이 쓰는 글은 서커스의 쇼야. 우리 왕의 죽음은 최고 메인이벤트겠지.” 

과거 영국에서 용병으로 일했던 라제스와르는 한때 키프로스 평화 유지군에 몸담기도 했다. 런던의 한 주점에서 휴가를 보내던 그는 뉴스를 통해 키프로스의 동지들이 탄 차량이 절벽에서 추락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는 혼란감을 느꼈지만 뉴스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인도의 한 서커스에서 호랑이가 탈출했다는 뉴스가 뜨기 전까지는.  

탈출한 호랑이의 포효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담긴 현장 영상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주점 안의 많은 이들이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으며 “정말 끔찍하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그때 라제스와르는 교훈을 하나 얻었다고 한다. 자신이 처할 일 없는 참극은 더없이 자극적인 오락이며 사람들은 그 오락을 소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잠시 이 책의 참조 문헌인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따르면,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앙의 이미지를 속속들이 볼 수 있게 됐으나 그것이 타인의 괴로움에 대한 공감의 능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지 과잉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로 소비한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타인이 겪은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며,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 

이와 동일한 문제를 ‘왕과 서커스’는 픽션의 틀 안에서 고민하고자 한다. 저자는 미스터리 소설 장르 안에서 소설을 구성했으나 그 초점은 '오락'에 맞춰져 있지 않다. 이 책이 조명하고자 하는 바는 진실과 앎에 대한 심층적 고찰, ‘어째서 진실을 알아야 하는가?’, 보다 자세히는 ‘타인의 비극이 오락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진실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다. 이는 라제스와르의 ‘서커스의 단장’이라는 비판에서 발화되어 마치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으로 연장·심화된다. 뉴스 생산자로서는 마땅한 고민이다. 

사실, 이 고민에는 정답이 없다. 어떤 의견을 콕 찝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윤리는 보편성을 지닐 뿐 절대성을 부여받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화두지 결론은 아니다. 의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저자의 방식은 어쩌면 명쾌하기보단 찝찝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화두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니며 결론 없는 고민이 전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불에 데였을 때 느껴지는 고통은 우리의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이듯, 또 화상을 입은 이가 불을 조심히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듯 ‘왕과 서커스’는 담담하면서도 통렬히 우리를 찔러 생각을 심는다. 비극의 소비에 익숙해진 우리의 경각심을 자극한다. 결국 답안지가 아니라 가이드라인이지만, 기실 그걸로도 역할을 다한 셈이다. 

물론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로만 두고 봤을 때도 완성도가 상당하다. 되도록 많은 이들이 읽어 보았으면 하는 작품이다. 

 

'왕과 서커스'

 

안민하 기자 minha961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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