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술가는 예술로 투쟁한다, 영화 '트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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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술가는 예술로 투쟁한다, 영화 '트럼보'
  • 안민하 기자
  • 승인 2021.08.2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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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하 기자
안민하 기자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내용이다. 영화 ‘트럼보’는 이 조항이 쓰인 팜플렛을 나눠주려다 외면당하는 달튼 트럼보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사람들이 트럼보를 거절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인데, 바로 그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세계 2차대전 직후 미국의 반공산주의는 정점을 찍었다. 승전국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혐오로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와 ‘혁명의 물결’이 조국을 휩쓰는 일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했다. 이런 혐오는 정치권에서도 빈번히 일어났다. 그 일례로 1947년 트루먼 대통령은 연방정부에 고용된 인원들 중 전체주의, 파시스트, 공산주의와 관련된 단체와 인물들을 감시할 것을 대통령령으로 승인한다. 다시 말해 정부의 허가를 받은 합법적 ‘블랙리스트’를 제작한 것이다. 반미활동 조사위원회의 공산주의 축출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수많은 예술가들은 공산주의에 호의적이라는 이유로 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헐리우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반미활동 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언을 거부, 의회모독제로 기소돼 결국 감옥까지 다녀온 트럼보는 ‘빨갱이’라는 낙인에 작품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된다. 사회적 매장을 감수하면서까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를 쓰고자 하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글을 내놓지 못하면 돈을 벌 수 없었으므로 그는 가명 뒤에 숨어야만 했다. ‘로마의 휴일’을 친구인 이완 맥캘란 헌터의 작품으로 둔갑시키고 B급 영화사에서 질 낮은 각본들을 헐값에 찍어냈다. ‘로마의 휴일’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지만 그가 수상자로 무대에 오르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암흑기에도 끝은 있었다. 트럼보의 ‘브레이브 원’이 아카데미 상 수상작에 선정되자 그의 딸은 이를 당당하게 받을 것을 권유한다. 이에 설득된 트럼보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두 수상작의 작가임을 밝힌다. 그의 용기를 지지한 동업자 커크 더글러스와 오토 프레밍거는 각각 ‘스파르타쿠스’와 ‘영광의 탈출’의 각본가가 트럼보라는 것을 공개한다. 이후 ‘스파르타쿠스’를 관람한 케네디 대통령의 호평에 입입어 블랙리스트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비로소 그는 작가로서의 이름과 정체성을 되찾는다. 

'트럼보'
'트럼보'

영화는 전미작가조합 로렐 상을 수상하는 트럼보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수상 소감으로 그는 말한다. “그 어둡던 시절에는 영웅이나 악당 같은 것은 없었다. 모두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을 강요받은 희생자일 뿐이었다”고. 분노와 힐난보다는 이해와 포용을 택한 트럼보는 그저 자신을 지지해준 가족에게 사죄하고 또 감사한다. 이렇게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 분노와 힐난이 아닌 이해와 포용을 끌어안을 줄 아는 이가 어쩌다 위험분자로 낙인찍혔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아마 그 당시 블랙리스트를 제작했던 이들은 할리우드의 영화들이 공산주의자들의 프로파간다 전파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예술과 정치를 완벽히 분리해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는 만큼 일정 부분 이해한다. 그러나 정부가 특정 집단, 개인의 악마화에 앞장서는, 반발하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 발언권 자체를 빼앗아 버리는 일은 어느 시대에서나 납득하기 힘들다. 

사상에 의한 탄압을 다루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특정한 정치색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기 영화로 분류하는 것 역시 다소 애매하다. 작품은 예술계의 암흑기를 꿋꿋이 살아가는 달튼 트럼보라는 실존인물을 담백하게 조명할 뿐이다.  

영화 속 트럼보는 열렬한 투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어딘가에 틀어박힌 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각성제까지 먹어 가며 끈질기게 글을 써 내려가는 인물이다. 허나 예술가는 예술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므로 그것은 그 자체로 투쟁의 수단이 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함에도 펜을 꺾지 않은 것. 그 자체로 그는 맞써 싸운 셈이요, 찬사받아 마땅하다. 감독 제이 로치가 이 영화를 “그 시절을 힘들게 이겨낸 영화인에 대한 헌사”라 설명한 것은 그런 이유이리라. 

안민하 기자 minha961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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