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이한주)은 몽골인 어머니를 둔 미등록 이주청소년이다. 고등학생인 오성은 학교의 특화 체육종목인 레슬링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떠한 등록번호도 가지고 있지 못한 오성은 선수로서 꿈을 펼칠 수 없다. 전국체전에 나서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한국인 남성과 혼인신고를 하거나 오성이 한국인 부모에게 입양되어 체류 자격을 얻어야 한다. 결혼을 빌미로 오성 모자를 착취해오던 이삿짐센터 사장 영철(장준휘)은 그의 절도 행각이 발각되자 오성의 어머니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결국 경찰에 연행되게 만든다.

목진태 블루프린트북 대표
목진태 블루프린트북 대표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되어 호평을 받은 단편영화 <파테르>를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에 대해 지금까지 거의 몰랐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의 자녀로서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린 시기에 한국에 온 아이들에겐 다행히 정규교육의 기회는 주어진다. 그러나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이들은 철저히 제도의 바깥에 놓여있다. <파테르>의 오성의 경우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무국적자’이기 때문에, 아주 기본적인 신분의 보장이 필요한 전국체전에 나설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대체로 미등록 이주아동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다치기 쉬운 운동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들은 등록번호가 필요한 이메일 가입, 콘서트 예매, 이동수단 예매와 같은 기본적인 활동조차 누리지 못한다.

영화 '파테르'의 한 장면
영화 '파테르'의 한 장면

사회에서 자신의 언어를 잃은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작가 은유의 신간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미등록 이주아동과 이들을 돕는 활동가들의 인터뷰한 책이다. 작가가 옮긴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의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아이들이 가장 박탈감을 느끼는 부분은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체류자격을 상실해 한국에서 추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러한 경우도 많은데, 바로 추방되지 않더라도 직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불법체류자’로서 불합리한 노동이나 그림자노동의 현장에 던져진다. 아이들은 이러한 현실을 너무도 일찍이 깨닫게 된다. 자포자기하듯 체념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 인터뷰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고, 그럼에도 끝없는 불안 속에 현재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체류심사를 받아 시민으로 인정받은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을 얻기도 하고, 책에서 나온 김민혁 군의 사례처럼 난민으로 인정을 받아 한국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한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2021년 4월 제정된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시행방안’은 국내에서 15년 이상 살아온 청소년에게 체류자격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지만, 2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아동 중에 이 기준에 적합한 아이들은 50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제가 가능한 대상이 전체의 2.5%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 논의된 결과가 이러하니, 법이라는 것의 운신은 얼마나 보수적인가. 하지만 교사와 급우들이 나서 난민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이들을 대변해온 김민혁 군의 사례처럼,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을 인식하고 다듬을 우리의 태도를 통해 다시금 희망을 꿈꿔본다.

레슬링에서의 파테르는 반칙을 범한 자에게 내려지는 벌칙과도 같다. 그리고 미등록 이주아동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 파테르의 방어자가 된다. 사회는 이들을 끊임없이 뒤집고 내치려하지만 바닥에 납작 엎드린 아이들은 온 몸을 땅에 붙인 채로 버틴다. 조금만 힘을 빼거나 방향을 잘못 잡아도 이들은 속절없이 전복된다. 영화의 말미에 오성이 버티는 파테르의 시간은, 그를 포함한 모든 미등록 이주아동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형상화된다. 이들의 박탈감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안간힘과 처절한 완력이 보는 이에게 더 절절하게 전달될 것이다.

있지만없는아이들
있지만없는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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