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계룡문고에서 이동선 대표가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우체부'를 낭독하고 있다. 안민하 기자
대전 중구 계룡문고에서 이동선 대표가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청소부'를 낭독하고 있다. 안민하 기자

 

'어린이만 읽는 것'이라는 그림책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계속되는 팬데믹 상황으로 지쳐가는 심신을 그림책을 통해 달래고자 하는 이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독서모임까지 생길 정도로 그 인기가 높은 가운데 어른들의 독서동아리 '한밭평생그림책친구'의 모임 현장을 찾았다. 

고즈넉한 오후 대전 중구 계룡문고에서는 조근조근 무언가를 읽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를 따라 서점 내 카페로 들어서자 '책 읽어주는 아빠'로 유명한 이동선 대표의 그림책 낭독이 한창이다. 무슨 책인지 슬쩍 보니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청소부’였다. 

“아저씨는 행복했어. 자기 직업을 사랑하고, 자기가 맡은 거리와 표지판들을 사랑했거든.”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특이하게 모두 중장년층 어른들이다. 그들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반짝이며 때때로 무언가를 메모하기도 한다. 듣는 자세는 모두 다르지만 당장이라도 책 속에 뛰어들 듯 집중하는 모습이다.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고 책이 덮인 이후에도 대화는 이어진다.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듯 생기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이 처음부터 그림책을 읽기 위해 모였던 건 아니다. 동아리 회원들은 원래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작은도서관 개관에 맞춰 자원봉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6주에 걸친 운영 교육이 끝나자마자 코로나19라는 방해꾼이 들이닥쳤다. 그대로 활동이 흐지부지될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독서동아리를 해 보는 게 어떠냐’는 누군가의 제안에 한밭평생그림책친구가 탄생했다. 

한밭평생그림책친구의 ‘평생’은 대전평생교육원의 평생학습에서 따왔지만 ‘평생 독서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전의 옛 이름이자 큰 터전이라는 뜻의 ‘한밭’에 그림책을 읽고 그 의미를 오랫동안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되자는 뜻까지 눌러 담았다. 지난 3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동아리는 한 주에 한 번씩 계룡문고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그림책이 이들을 한데 묶는 끈이 된 셈이다. 

그들이 말하는 그림책의 매력은 일반 책에 비해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내용이 쉬워 빨리 읽히는 데다 짧은 내용 안에 교훈까지 담겨 있어 알차다. ‘지금은 그림책을 읽을 나이’라던 김영희(56) 씨는 ”심적으로 가벼우면서도 느끼게 해 주는 바가 많으니 그림책이 좋은 것 같다“며 ”재미, 느낌이 있고 배울 점도 있어 읽을 수밖에 없다”고 활기차게 말했다. 

한창 담소가 계속되는 중 누군가 건넨 ‘꾀꼬리같은 목소리’라는 칭찬이 ‘요즘은 뻐꾸기 소리가 그렇게 예쁘다’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이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또다른 그림책을 들고 돌아온다. 노래로도 유명한 ‘오빠 생각’이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이 대표의 선창으로 시작된 노래는 회원 모두가 목소리를 모아 부르는 합창이 됐다. 이처럼 허심탄회한 삶의 이야기로 주제가 흘러가고 일상적인 이야기가 다시 책에 대한 주제로 돌아오는 풍경은 더없이 자연스러워 졌다. 

그림책을 좋아해 모인 이도 있지만 반대로 모임을 계기로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 이도 있다. 그림책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 황경임(61) 씨는 “여기 참석하면서 어느날 마을 도서관에 가 그림책을 봤는데 짧으면서도 여러 권을 읽을 수 있었다. 20~30권을 독파하고 집에도 몇 권 빌려 갔다”며 “모르는 세계, 그림책만의 다른 세계가 있었다”고 그림책 읽기를 적극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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