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진태 블루프린트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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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영화관이 물러선 자리에서

이번 지면에서는 개별 영화에 대한 언급은 삼가고자 한다. 작년 한 해 동안 영화관에 간 기억을 손에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그러하다. 팬데믹으로 여러 산업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영화관과 영화 산업이 입은 피해도 어마어마하다. 전국적으로 영화관이 다수의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에 포함되었고, 밀폐되고 어두운 공간이라는 특성과 맞물려 영화관은 이 시기에 가선 안 될 공간으로 취급받고 있다. 어떤 근거들은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면서까지 주장하고 싶진 않다. 다소 아쉽더라도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관객에게 대안적 감상 환경을 제공하고 있고, 극장 개봉을 목표로 제작된 몇몇 영화들은 관객과의 접점을 마련하기 위해 이들 영상 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극장과 전자기기를 통한 영화 체험은 차원이 다르다. 몇몇 영화들은 확실히 영화관에서 보아야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으며, 영화는 영화관에서 상영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작은 화면으로 다소 산만한 환경에서 본 영화를 두고 ‘그것은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또 지금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적당한 크기의 화면과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사운드로도 의미 있는 영화 감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플랫폼’이 가진 ‘소셜’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관에서도 박스오피스라는 순위가 있고, ‘천 만 관객’을 향하는 영화의 흥행은 사회적 현상으로서 어떤 담론과 해석을 양산해왔다. 그러나 스트리밍이 영화 감상의 주요 수단이 된 지금은 그 주기가 너무 짧아졌다. 영화 감상은 공적인 행위이기도 하고 사적인 행위이기도 하여 이 두 가지 영역이 조화를 이룰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의 영상 플랫폼은 전자의 성격만을 발현시키기 쉽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본 영화를 나도 보았다는 사실, 플랫폼이 제공하는 은근한 흐름에 연결되기 위해 빠르게 다음 영화 ‘콘텐츠’를 소비해야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영화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이기도 하다. 영화가 복잡다단한 일상의 고민들을 재현하지 않으면서 평안하고 명쾌하길 바라는 관객들은 영화를 콘텐츠 중 하나로 소비한다. 반면 영화는 우리의 사회나 존재에 어떤 질문을 던지면서 일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유를 촉발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어느 관점에 기대 가치판단을 내리고 싶지 않지만, 문제는 점점 영상 플랫폼에서도 후자의 감상을 바라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넷플릭스와 협업하는 현상을 보아도 그러하다) 이들 영화는 다음 영화, 또 그 다음 영화에 의해 잊히기에는 정말 아쉬운 작품들이다.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김호영 작가가 프랑스 영화에 관해 쓴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는 비평서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를 가다듬을 수 있는 훌륭한 교보재이기도 하다. 영화를 감상하는 문화에 대해 긴 한탄을 쓴 이유는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 우리의 관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비평의 언어는 영화보다 느린 편이기에 평론가의 비평집이 때론 철 지난 이야기처럼 들리는 반면, 이 책은 영화 전반에 대한 한편의 다정한 산문집처럼 다가온다.

“…영화는 안식이 아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불편한 자극이며 결말을 알 수 없는 위태로운 스펙터클이다. 날카로운 빛처럼 우리의 눈을 찌르고, 일순간이나마 우리의 의식을 꼼짝 못하게 붙들며, 둔중한 몸과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 불편한 시간을 통해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식어가는 심장과 뇌를 다시 데우고, 화석화되어가는 감정과 사유를 깨뜨려 스스로 계속 살아 있게 만들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뜨거운 감동을 얻든, 황홀한 희열을 얻든, 잔잔한 위로를 얻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개인의 운(명)이다.”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서문 중

영화가 팝콘처럼 소비되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이겠는가 만은, 영화관은 영화를 위한 공간의 경계를 지어줌으로써 지극히 유동적인 일상에 영화가 휘발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최후의 장치이기도 했다. 영화관이 이런 역할을 잠시 우리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시대에, ‘다음 영화 보기’를 누르는 것을 잠시 멈추고 우리에게 영화란 무엇인지, 지금 내가 본 것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을 갖길 권한다. 저자는 영화라는 예술의 본질을 프랑스 영화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다. 서문 뒤로는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프랑스 영화감독 11인의 작품 에세이가 이어진다. 물론 프랑스 영화가 대체로 그러한 편이지만, 장담컨대 지금 눈앞의 모니터에 떠있는 수많은 영화들 또한 우리의 ‘심장과 뇌’를 다시 뛰게 할 수 있는 훌륭한 텍스트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영화관에서, 이 시간을 감내한 우리가 예전보다 더 맑은 눈으로 영화를 만날 수 있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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