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북'은 매주 시집, 소설, 산문 등 신간을 발매한 작가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독특한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소소하면서 진지한 작가와의 대담 속에서 그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뉴스앤북이 독자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뉴스앤북과 함께 분야와 지역을 넘어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진영대 시인
진영대 시인

기나긴 장마가 지나가고 늦여름 막바지 무더위가 찾아온 8월 뉴스앤북이 진영대 시인을 만났다.

세종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진 시인은 푸근한 목소리로 오랜 기억들을 회상했다.

그는 항상 낮은 곳, 어두운 곳에서 말을 시작해 희망이란 단어로 끝을 맺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한 노신사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Q.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하고 싶은 걸 다 시켜준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힘들 것이란 생각을 혼자서 늘 하곤 했죠. 하나뿐인 제 동생이 공부를 더 잘한다고 생각해 상고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상고에 진학하게 되면 취업하기 편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동생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고 동생을 공부시키겠다는 제 목표도 사라져버렸죠. 너무 허망한 책만 주구장창 잃었습니다. 그러던중 독서신문 독자란에 시랍시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Q. 혼자 힘으로 시를 쓰신 건가요?

A. 고등학교 2학년 때 모습이 보이지 않아 자퇴를 했구나 생각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일찍이 사회에 진출해 시인 행세를 하고 있었죠. 그 친구가 저를 유심히 봐왔던 모양인지 시립문학회에 초대해줬습니다. 그런데 시립문학회 회원들과 만나자마자 마지막 동인지를 만든 뒤 뿔뿔이 흩어지게 됐어요. 다들 등단을 위해 떠났죠. 당시 문단에 진출하면 모임에서 나가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계기로 친구와 함께 시를 쓰게 됐어요.

Q. 힘들었던 과거를 겪은 뒤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A. 제게 글을 가르쳐주시던 박용래 선생님이 있었는데 시를 배우던 중 군대를 가게 됐어요. 광주 31사단에 입대하게 됐는데 입대 1년 만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죠. 그 해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본래 체력도 약하시던 분이였는데 외부에 연락을 하지 못했던 제 상황에 속병을 앓다 숨을 거두셨어요. 또 그 해 연말에 박 선생님에게 연하장을 보내드렸는데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죠. 두 분에게 너무 죄스럽고 힘들어 ‘시를 그만 둬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시를 안 쓰려고 노력했어요.

Q. 그렇게 아픈 일을 겪은 뒤 다시 시를 썼던 이유가 있을까요?

A.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버티고 잘 살다보면 제 삶 후반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한 거예요. 공직 생활을 10년 이상 하면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고 할 일도 많이 없었죠. 그래서 다시 시를 써볼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애초에 공무원 생활도 20년만 하자고 정해놨기 때문에 출세욕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다시 백지위에 써내려갔습니다.

Q. 왜 공무원을 딱 20년만 하겠다고 결정했나요?

A. 제가 좋아하는 것은 아직도 시인데 그것을 하려면 제가 먹고살 만큼의 여유가 있어야하죠.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일을 시작했고 20년이란 시간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굶지만 않으면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과 살기위해 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의미죠. 그래서 제 자식들에게도 항상 “덜 성공해도 살아만 남아“라고 말해줍니다. 결과적으로 시를 쓰기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함이에요. 하지만 전 시를 쓴다는 사람을 못 쓰게 말립니다.

Q. 글을 쓰지 못하게 만류한다고요?

A. 주변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며 힘들어하는 걸 많이 봤어요. 속으로는 글을 쓴다고 하면 좋지만 잘 살던 사람들이 문학을 시작하면 잃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의지가 확고하면 전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죠. 글을 가르치며 느낀 건 사람이 하나 무너지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단 마음입니다.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이에요.

Q. 오랜 세월 글을 쓰고 있는데 삶에서 시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A. 시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시점이나 경험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 할 게 없어서 시를 썼는데 기다리다 보니 일이 생겼어요. 제가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면 다른 직업을 선택했겠죠. 장덕천 시인이라고 사업으로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일찍이 큰 병에 걸려 몸을 움직이지 못 했습니다. 장 시인이 그 고통을 30년 동안 버틴 원동력이 바로 시였어요. 힘든 세월을 견뎌내고 있는 그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죠. 어쩌면 시가 제 삶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시가 다가오는 시점이 있다면?

A. 전 시를 써야지 하고 쓴 적이 없습니다. ‘시를 받는다.’란 느낌을 많이 받아요.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시가 되는 거죠. 일에서 문득 들었던 단어를 메모해놓고 보면 글이 보이고 시가 완성돼요. 오랜 시간 시를 잡고 있지 말고 놓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글을 안 쓰실 때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A. 연기군이 세종으로 편입될 때 공직 생활을 끝낸 뒤 10년간 농사를 짓고 있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혼자서 시간을 보내죠. 일단 잘 살았던 시간이 농사를 지은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사꾼이 되어보니까 잘 짓지는 못해도 굶지는 않아요. 배짱이 생겨 세상에 일어나는 어떤 일들도 대수롭지 않게 됐죠. 하지만 농사를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농사는 조금 멀리 하려고 합니다. 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서죠.

Q. 시에 많이 투자하는 이유가 다음 작품을 위해선가요?

A. 지금 생활이 많이 편해졌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글을 계속 쓰려고 해요. 그래서 개인소장용으로 책을 한 두 권 더 내려고 합니다. 제가 ‘글을 쓰겠다.‘고 말했던 것을 주워 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죠. 그래서 산문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고 빠른 시간 내에 시집, 수필집을 내면 쉴 나이가 다가오겠죠.

Q. 추천해주고 싶은 작가, 시인이 있나요?

A.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오랜 시간 만나온 유수화 시인을 추천하고 싶어요. 지난 2000년 등단해 글을 쓰고 있는데 시가 좋다는 생각을 항상 하죠. 곧 대전에서 세종으로 활동 지역을 옮기는 유 시인의 이야기를 뉴스앤북이 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제가 시를 더 깊이 공부할 용기가 없었는데 세종문학 회원들로 인해 힘을 얻고 있어요. 이은봉, 성배순, 정용기 시인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죠. 그들의 노력이 결과물 ‘세종시마루’로 만들어져 세종의 이야기를 많이 알리고 있습니다. 그 활동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죠.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나도 세종 사람’이야 하고 쳐다보는 것도 미안해요. 전 정말 한 것도 없이 도망갔기 때문입니다. 이젠 옆에 있어주며 힘을 주고 싶어요. ‘도움이 필요하다면 조금씩 돕는 게 맞다‘는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시인 프로필

진영대 시인은 세종에서 태어났다. 한밭대학교 전기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길고양이도 집이 있다』, 『술병처럼 서 있다』가 있다.

송영두 기자와 진 시인
송영두 기자와 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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