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북'은 매주 시집, 소설, 산문 등 신간을 발매한 작가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독특한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소소하면서 진지한 작가와의 대담 속에서 그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뉴스앤북이 독자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뉴스앤북과 함께 분야와 지역을 넘어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뉴스앤북이 나태주 시인을 만나기 위해 공주풀꽃문학관을 찾았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공주풀꽃문학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웅장하지 않고 거창하지 않지만 소소한 행복들이 구석구석 자리해 나 시인을 만나기 전 설레이는 맘을 간질였다.

공주풀꽃문학관에 들어서자 소박한 공간이 보였고 나무 마루를 밟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마스크를 쓰고 문학관에 들어온 나 시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의 첫 인상은 소박하고 따뜻했으며 소탈하고 밝은 모습은 마치 알던 사람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중절모 신사 나 시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Q.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제가 시인협회장이 어렵게 됐어요. 그런 면에서 감개가 무량하지요. 저는 시인협회회장 자리가 필요해서 간 것이 아니고 제가 시인협회에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이야기에는 뿌리가 있는데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캐네디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됐어요. 당시 연설에서 ’국가가 나를 위해서 무슨일을 해줄까 바라고 원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제 소감은 "제가 시인협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에요.

Q. 회장직을 맡고 계신데 있어 힘들지는 않으세요?

그런 건 묻지 마세요(웃음) 힘든 이유가 있다면 돈과 인간관계가 때문에 힘들죠. 인간관계를 어떻게 조율하고 얼마만큼 나가고 얼마만큼 들어오는가. 시인협회장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잘 융화시켜야 하니까요. 저는 시인협회가 향기로운 단체가 되길 바랍니다.

Q. 향기로운 단체라면?

향기는요 존재 없는 것 가지고 사람을 융화시켜요. 안보이고 존재가 없잖아요. 그런데 없다고 말하진 않아요. 시인은 이름에서도 향기가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이름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항상 걱정스러워요. 이 말을 시인들이 깊이 명심해야 돼요. 우리 시인들은 ‘우리 협회에서 무슨 향기가 날까?‘라는 걱정을 하며 운영을 해야 돼요. 그것이 제 어려움입니다.

Q. 등단하신지 50년이 되셨는데 작가님 인생에서 시와 글은 어떤 의미인가요?

50년이 참 화려하게 지나갔어죠.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가 50년 동안 시를 계속 썼는데 왜 썼을까요? 쓰기 싫었으면 썼을까요? 공자께서 말씀 하셨어요. ‘지자(知者)는 불여 호자(好者)요 호자(好者)는 불여 낙자(乐者)니라’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는 거예요. 인생의 목표는 호자(好者)가 되는 것도 있지만 끝내 낙자(乐者)가 되는 거예요. 시 쓰기는 많이 괴로웠어요. 그렇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끝없이 좋아하는 것이 됐고 그것이 나에게 즐거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날 문학을 접근할 때 보면 대부분 지자(知者)로만 접근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수능에서 답 맞추고 그러면 내가 1등이고, 내가 우승이고 이렇게 하면 매우 불편한 얘기에요. 인생은 ’지(知)‘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호(好)에서 연결이 되고 주축이 되고 그리고 낙(乐)에서 환생이 되는 거예요.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에요. 서로 알아다가, 서로 좋아하다가, 그런데 좋아하는 것 가지고는 안돼요. 서로 기뻐야 해요. 저는 저 사람을 배려할 때 서로 기쁘다고 생각해요. 제가 시를 배려해야 해요. 제가 시를 챙겨줘야 해요. 그래야 제가 끝까지 기쁠 것 같아요. 저에겐 그런 것이 시에요.

Q. 등단하시기 전에 교직생활을 하셨는데 교직 생활 중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70년을 넘게 살다보니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공이지만, 성공 앞에는 실패가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돼요. 실패 없이, 시련 없이 성공과 성취는 없는 거예요. 제가 인생에서 2번 가장 큰 실패를 맛봤어요. 첫 번째는 신춘문예 당선되기 직전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지역신문사는 없었고 서울에 있는 중앙지 신춘문예만 있었죠. 그런 상태에서 6~7명 중 시인이 나 하나가 됐어요. 시인은 혼자서 되는 겁니다. 도움은 있죠. 그래도 시 쓰는 건 혼자 쓰는 거예요. 내 인생에서 여자한테 청혼 했다가 차여서 시인이 됐어요. 실연을 당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런 마이너가 있었기 때문에 시인이 될 수 있었죠. 처음에는 원망도 많이 했지만 그가 나를 차주지 않았으면 나는 시인이 될 수 없었어요. 그게 제 결론이에요.

Q 청혼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아내 분께 고마움이 많다고 들었어요.

우리 집사람은 저를 참 잘 살펴주는 사람 이예요. 저에게 약도 매일 먹어라 말하고, 양말 뒤집어 놓으면 뭐라하고, 목욕탕에서 거품 묻히고 나오면 혼내고, 그런 보살핌 속에 살아요. 집사람은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방해를 안 해요. 제가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집사람에게 패키지 사랑을 배웠다고 말해요. 보따리에 넣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까지 사랑해주는 거예요. 남편이나 애인이 아빠를 사랑하면 그것까지 사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집사람은 제가 누구를 좋아해도 같이 예뻐 해줘요. 아침에도 안 일어나면 절대 깨우지 않고 같이 자요. 내가 깰 때까지 기다려요. 과일도 제가 좋아하는 건 먼저 먹지 않고 제가 먹길 기다려줘요. 피카소가 마지막에 여자를 만났어요. 피카소가 집 안을 더럽히고 지저분하게 생활해도 불평하지 않고 어딘가 있었어요. 그러다가 피카소가 부르면 바로 달려왔다지요. 피카소가 제일 말년에 그 여자를 만나 행운으로 알고 편하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피카소는 여러 여자를 만나고 결국 쟈클린을 만났는데 저는 29살에 단박에 쟈클린 같은 여자를 만났어요. 그 사람이 제 집사람 이죠.

Q. 방금 전 말씀에서 “너무 가지말자”를 통해서 시를 쓰신다고 하셨는데 시상이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자연, 사람 특히 사람한테 와요.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좋지 않은 것을 좋게/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사랑에 답함')

이 시 앞에는 여자가 있어요. 그것도 어린 여자. 그 여자하고 계속 대담을 하는 동안에 이 시가 생긴 거예요.

아이에게 물었다//이담에 나 죽으면/찾아와 울어 줄거지//대답대신 아이는/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꽃 그늘’)

이 시에도 여자가 있어요. 아까 시와 이 여자는 같은 여자인데. 제 시를 보면 시 앞에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들한테 영감을 받는 거예요. 특별히 뭘 주어서 영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스스로 말 한마디, 얼굴표정에서 시상을 얻죠. 틈새를 타고 미세하게 와요. 그거를 잡아야 해요. 그걸 알아차려야 해요.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시인 이예요.

Q. 그러면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 오른 ‘풀꽃’도 자연에서 영감을 얻으셨나요?

다들 '풀꽃'을 자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연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풀꽃’)

그 시의 핵심은 ‘너’에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삶의 태도에요. 그런데 핵심은 ‘너’죠. 그 시를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그 시를 조금 더 들여다봐야 돼요. 사실 ‘풀꽃’은 교직생활을 하면서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한 말을 시로 표현한 거예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말을 안 들어요. 그러면 제가 “좀 자세히 봐라, 좀 오래봐라”라고 잔소리를 했어요. 아이들이 재밌는 것이 말 안 듣는 아이들이 끝까지 그런건 아니에요. 애들이 선한 구석이 있어서 “예”하고 듣는 기준이 있어요. 그래서 돌아가는 아이 뒤통수에 “너희들도 그래”라며 축복해줬어요. 그 시의 배경은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써준 시에요. ‘나만 그렇다’가 아닌 ‘너도 그렇다’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요.

이름을 알고 나면/이웃이 되고//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모양까지 알고 나면/연인이 된다//아, 이것은 비밀(‘풀꽃2’)

이건 두 번째 안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보고 그 다음에 안다는 거죠.

기죽지 말고 살아봐//꽃 피워 봐//참 좋아(‘풀꽃3’)

이 시에는 삶의 단계가 담겨져 있어요. 사실 풀꽃 시리즈는 5탄까지 있지만 시리즈 3에서 끝냈어요. 첫 번째는 보자, 정성스럽게 자세히 오래보자, 그런데 그게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너도 그렇다는 의미가 확장이 된 거예요.

Q. 그러면 교직생활을 안하셨으면 지금의 ‘풀꽃’도 없었겠네요?

그렇지요. 제 시 어법이 거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말이예요.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아주 쉽고 눈높이가 낮아요. 그러므로 누구나 다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시예요. 어려운 말도 없고 어려운 구절도 없고 어려운 비유도 없고 그래서 시인이나 평론가들은 제 시를 별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일반 독자들은 다 이 시를 좋다고 말해요.

하늘 아래 내가 받은/가장 큰 선물은 오늘입니다//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가장 아름다운 선물은/당신입니다//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한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선물’)

제가 쓴 시 선물 입니다. 어려운 말이 있어요? 풀꽃은 낮아요. 낮아야 해요. 너무 높게 높이를 보고 살다보니까 스스로 공허감을 느끼고 우울하고, 소외감을 느끼고, 불안하고 그런 거예요.

Q. 그러면 평소 동요와 동시를 좋아하시는 이유도 여기 있나요?

동요를 좋아하지요. 동시는 제가 못 쓰는데 저는 동화를 좋아해요. 머리맡에 항상 동화책을 두고 속상할 때 마다 읽어요. 신선미 작가의 ‘개미요정의 선물’을 읽었는데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 책이 너무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죠. 이런 책을 우리나라 사람이 썼다는 게 아주 놀라워요. 이것도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있다가 이 책을 찾아냈어요. 우리는 어른이 됨으로써 어린아이 시절의 깨끗하고 순수했던 마음을 잊어버렸어요. 비록 그 시절을 잊어버렸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것이 동시와 동화를 읽는 이유에요.

Q.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출간하셨는데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 진짜 감사한 것은 말기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이죠. 70이 넘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는데 네이버를 찾아보면 베스트셀러가 10권이 떠요. 저도 참 놀라운 일이에요. 현재 '사막'과 '사랑'에 대한 책을 내려고 준비 중이에요. 옛날에 써놓은 것들을 주제별로 골라내고 있어요.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시는 제가 썼지만 독자들이 해준 거예요. 독자들의 구독행위, 독자들의 은혜, 독자들의 보살핌으로 인해 이 자리에 오른 거예요.

Q. 그런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독자들이 제 책을 찾으시는걸 보면 살기가 조금 힘드시다 생각해요. 제 책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 걸까요? 이념을 원할까요? 파워풀한 주장을 원할까요? 분명한 메시지를 원할까요? 그런 게 아니에요. 흐릿하고, 조그마하고, 낮고, 촌스럽고 그런데 뭔가를 채워달라고, 쓰다듬어 달라고 그런 걸 원하는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독자들은 제 시를 위안을 받기위해 찾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할 일이 많고 나이가 많고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게 고달파요. 그런데 강의만 200회 이상 진행했지요. 제가 서슴지 않고 나가는 이유는 제가 무언가를 줘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제가 키가 작은데 저보다 더 작은 친구가 있었어요. 제 출석 번호가 7~8번 인데 그 친구는 말할 것도 없이 1번이였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10년 후에 보자. 10년 후에 키를 재러 올거야”고 말했어요. 10년 후 그 친구는 따로 키를 재보지 않아도 큰 키가 돼서 돌아왔어요.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말은 ‘10년 후에 보자’에요. 자신에게 약속하고 주문을 걸고 사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10년을 투자하면 변화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제가 50명 중에 45등이 이였는데 지금도 동창회에 가면 지금도 활동하고 지금도 책쓰고 지금도 강연하는 사람을 나밖에 없어요. 풍금도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나 밖에 연주하지 못했는데 지금까지 풍금을 즐기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풍금을 치면 나한테 위안이 와요. 집에서 곡조도 없는 풍금을 연주하다 보면 울기도하고 많은 감정을 느껴요. 저한테는 풍금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 이예요. 10년 후에 보자라는 말이 가장 중요해요. 저는 5년 후에도 제가 이 집, 이 자리에 있길 소망해요. 젊은 세대들이 살기가 어렵고 힘들고 넘어질 것 같아도 다시 일어서고 넘어지지 않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두 다 꿈을 잃지 말고 살아가세요.

인터뷰가 끝난 후 나 시인은 풍금에 앉아 동요를 불렀다. 동요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고 설명하는 모습에서 순수함이 가득 묻어났다.

수준급 연주가 아니여도 투박한 연주 속에서 그가 노래에 담은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풀꽃문학관에 울려퍼지는 풍금 소리와 나 시인의 노랫소리가 나의 어린시절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 작가 프로필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공주사범대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대숲 아래서,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굴뚝각시', '아버지를 찾습니다',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 '추억이 손짓하거든', '딸을 위하여', '풀잎 속 작은 길', 슬픔에 손목 잡혀',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등이 있고, 시화집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송수권·이성선·나태주 3인 시집 '별 아래 잠든 시인'등이 있다.

현재 공주풀꽃문학원 원장,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 재직 중인 나태주 시인은 넉넉한 웃음에 마음씨 좋은 아저씨 또는 할아버지 바로 그 모습의 주인공이다.

그의 시는, 복잡한 도심을 떠나 자연의 품에 안겨 여유를 느끼고 싶어하는 현대의 독자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시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의 시에는 자연이 있고, 잃어버린 고향이 있고, 살가운 이웃이 있고, 추억이 있다.

송영두 기자 duden1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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