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게도 감정이 있을까, 그들도 슬픔을, 사랑을,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느낄까?

슬픔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찾아와 같은 흔적을 남긴다.

이예은
이예은

이 책은 각 챕터별로,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 고양이부터 코끼리, 침팬지, 돌고래 등의 동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까지 그들이 부재를, 슬픔을 어떻게 느끼고, 대처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와 고양이는 우리 삶에 가까이 있고,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과 가까이 있는 이들이라면 그들도 우리가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혹은 슬픔이라거나 어떤 감정 상태에 우리가 빠져있을 때, 그들은 슥 다가와 우리에게 위로를, 또 기쁨을 건네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서는 어떨까, 혹은 반려동물이 아닌 농장동물들도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낄까? 슬픔이란 감정은 종을 넘어서도 가능한 걸까? 하는 의문의 제기와 함께 제시되는 여러 동물들의 실제적인 사례가 우리로 하여금, 그들 또한 슬픔을 느끼고, 동물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그들과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동물이 겪는 사별을 주제로 한 이 글은 동물의 감정적 삶에 대한 생각과 동시에, 인간의 고유한 특색에 대한 생각까지도 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의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나 역시도 그들도 부재를 느끼고, 슬픔을 느낀다고 인지하지 못했던, 더 정확하게는 관심조차 없었던 동물들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인지하고,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슬픔의 존재를 느낀다는 것은, 사랑 또한 존재한다는 의미이기에,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는 사랑과 슬픔은 각기 다르고 또한 특별하다.

이 책은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각 챕터별로 각기 다른 동물들의 사별, 부재에 대한 그들의 슬픔과 대처방식에 관한 여러 사례를 소개한다. 그 중에 함께 소개하고 싶은 짧은 사례가 있는데, 동물도 자살을 할까, 하는 조금은 무거운 의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곰 사육농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 것들 중에 하나지만, 개 농장, 고양이공장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곰도 우리에 가둬두고 사육을 하는지는 몰랐다.

곰을 사육하는 이유는 곰에게서 담즙을 얻어내기 위함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담즙은 곰에게서만 분비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들에게서 분비되는 물질이고, 또한 ‘우르소디올’이라는 합성 화합물도 개발이 되어서 현재 담석증 치료에 이용되고 있다.

곰으로부터 곰의 담즙을 채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간이 만들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하지만 이런 대안들은 곰 담즙 사업을 완전히 종식시키지 못했는데, 그 인위적인 본성을 말미암아 오히려 거꾸로 진품에 대한 가치를 더하며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마치 살아있는 곰에게서 추출한 담즙은 부의 상징과도 같은 의미로 남게 되었다. 부자들만이 구할 수 있는 트로피 같은 의미가 되어버렸다. 사육장 안에서의 곰은 영구적으로 누워 지낼 수밖에 없는 좁은 철망에 한 마리씩 갇혀있는 삶을 살게 되는데, 먹이는 먹어야 하니 한쪽 팔만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둔 아주 작은 공간이다.

제대로 마취를 시키지 않고 반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밧줄에 묶여있는 곰에게 녹이 잔뜩 쓴 금속 추출관을 곰의 복부 쓸개 위치에 영구적으로 꽂아버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을 잃는 곰들도 나타난다. 우리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는 곰들은 철장에 머리를 박는다. 죽음의 구원은 너무도 느리게 다가온다. 아시아 전역의 담즙 공장에 몇 마리의 곰이 감금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만 마리에 가깝다고 추정한다.

곰이 스스로 자살을 했다는 사건은 다음과 같다. 평생을 금속관을 꽂은 채 살아온 어미 곰이 있었다. 새끼 곰은 다른 우리에, 아직 어려서 금속관을 꽂지 않은 상태였고, 사육장 직원이 새끼 곰에게서 담즙을 채취하려 하는 과정에 새끼가 고통에 울부짖자, 어떻게 탈출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에서 빠져나온 어미 곰이 자신의 새끼를 있는 힘껏 껴안았고, 새끼 곰은 목이 졸려 사망했다.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그리고 곧장 어미 곰은 벽으로 돌진해 자신의 머리를 박고 사망했다. 이 상황만으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동물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의식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한 신문 기사에 인용된 목격자의 주장에 따르면, 어미 곰은 새끼 곰을 ‘지옥 같은 삶에서 구하기 위해’ 죽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곰이 사실상 안락사에 가까운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걸까? 우리는 사랑의 이면이 슬픔이며, 함께 하는 기쁨의 이면은 고독한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슬픔이 너무 깊어지면 동물들은 사랑하는 이를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는 것일까?

동물이 자살을 한다면, 슬픔이 동기일 수 있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단언할 수 없다. 아직은 많은 부분이 미지수이고, 우리가 인간으로써 동물을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어미 곰의 사례가 자살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다.

이 사례는 생각의 큰 파장을 일으키며, 한동안 책의 다음 장으로 넘길 수 없고 머무르게끔 했다. 동물이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 동시에 인간이 동물에게 슬픔을 안긴다는 사실, 거기에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인간의 책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가 인간으로써 많은 부분에 문제를 일으키기고 있지만, 또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황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에게 감정이 있고,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공존하며, 어우러지며 이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종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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