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을 거치면서, 1970년대에 심한 인간소외가 일어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장에서 기계적인 일을 반복하고, 인간답게 대우받지 못하는 삶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다양한 문학작품들 속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인간소외 모습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많은 발전 덕분에 인간소외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과연 찾아볼 수 없는 게 맞을까?

황유담
황유담

이번에 가져온 책은 ‘구의 증명’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비참한 현실 등 다양한 소재를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선 두 가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주인공인 ‘담’의 시점과 담의 애인인 ‘구’의 시점으로 과거회상과 현재를 오가는 형식이다. 스토리는 단순했다. 구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담의 회상과 그런 담을 어딘가의 공간에서 바라보는 구의 회상. 하지만 책에선 이 한마디로 압축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있다. 청소년의 불안한 마음, 진로에 대한 막막함, 어려운 생활에 어설픈 위로, 소중한 사람의 죽음, 모순적인 사회... 많은 소재들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담겨있었다. 내가 여기에 중점적으로 담을 이야기는 내게 정말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게 했던 소니 빈의 이야기이다.

“죄책감 없이. 당연하게. 쭉 그래왔으니까. 약한 놈만 골라잡으면서. 잡힌 놈이 등신이지, 생각하면서. 애들도 그렇게 키우고. 후회한다면, 힘이 세지 않은 걸 후회하고. 죄책감을 갖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고. (중략) 우린 그렇게 키우지 말자.” -구의 증명 中-

이 이야기는 한때 잠이 안오는 담에게 구가 해준 이야기인데, 지금 현실과 비유되는 이야기라 꼭 소개해주고 싶었다. 소니 빈이라는 남자는 아내와 절벽 아래 동굴에 살면서 강도짓을 벌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물건을 빼앗고 죽이는 식으로 살아갔는데, 이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소니 빈과 아내는 죽인 사람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식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을 약탈하고, 죽이고, 먹고. 이 행위를 계속 반복하면서 대대로 마지막 자손까지 전해내려져 온 것이었다. 소니 빈의 자식과 손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 고기를 먹어서, 사람을 먹는 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살인과 강도와 식인은, 우리가 회사에서 일을 마친 뒤 돈을 받아 돼지고기를 사먹는 것과 같았다. 아무도 죄책감과 죄의식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도 그 아이들 중 한 명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당연하다는 식으로 가르쳐온 그 행위는 그들에겐 강도와 살인을 잘하면 그것은 능력이고, 잘못하면 언젠간 자신도 먹힐거라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죄의식과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취급했을 것이다. 구는 담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자신들의 아이들은 이렇게 키우지 말자고 얘기한다. 그 무엇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들의 가난도, 자신들을 좀먹는 이 사회의 이치도 말이다.

구의 증명
구의 증명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는다. 소니 빈에서는 그 이야기가 직관적으로 진짜 ‘먹는다.’는 개념이겠지만, 우리 사회에선 ‘상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사회적 지위이든, 물질적 풍요이든, 정신적 희망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의 무의식에는 이 문장이 기저에 깔려있을 거라 생각된다. 바로 ‘돈’의 유무로 말이다. 서론에서 언급했던 인간소외 현상은 관료제로 인해 인간이 부품처럼 쓰여지는 그런 현상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재 오늘날의 인간소외는 바로 이 돈에 의해 더 악질적이고 끔찍해졌다.

1970년대의 그때와 오늘날은 많이 비슷하다. 앞서 얘기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그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됨을 느끼고 비판을 해왔다면, 지금은 숨겨진 인간소외를 알아차리더라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참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다.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피하지 못한 내 잘못이고, 범죄가 일어나더라도 당한 놈이 멍청하다고 하던 때였다. 지금은 그 관점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젠 하지 않는 말이지만, 돈과 관련해서, 권력과 관련해선 말로 하지 않아도 유효한 말이라고 모두들 생각할 것이다. 피해를 입으면 피하지 못한 자의 상실을 당연히 여기고, 피하지 못한 자의 멍청함을 탓하고 돈으로 인간을 사고 팔 수 있는.. 그런 사회가 과연 그때보다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린 어쩌면 인간소외로 이어지는, 당연하게 여기는 이치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뉴스앤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