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댄스스포츠 동아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땐뽀걸즈>가 관객의 이목을 끌면서, 사람들은 거제도의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듯하다. 영화가 중간중간 아이들와 가족들이 어떻게 평소 지내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아이의 아빠는 삼성중공업을 퇴직하고 다른 지역으로 돈을 벌러 나가고, 다른 아이의 아빠는 조선소 직원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혹은 부모가 모두 다른 지역으로 벌이를 나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아이도 있다. 중공업 도시 거제의 기쁨과 슬픔에는 항상 조선소가 있었고, 현재 조선소를 둘러싼 거제도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목진태 블루프린트북 대표
목진태 블루프린트북 대표

이러한 현실을 가장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책은 2019년에 출간된 사회비평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이다. 책은 조선소로 흥하고 쇠락한 중공업도시 거제도의 문화를 살펴본다. 저자는 거제의 산업 구조에 따라 변화한 가족의 형태에 주목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아내나 딸의 경제활동을 위한 구역이 애초에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2세 여성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조선소의 사무보조직이다. 그리고 조선소가 휘청거리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 속에, 아이들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맥락 속에 ‘땐뽀걸즈’ 아이들이 있다.

다만 영화의 미덕은 이 모든 상황을 뒤덮는 아이들의 얼굴과 선생님의 마음에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찬란하기 때문이다. 비록 아이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흩어졌지만, 땐뽀걸즈 아이들에게만큼은 하고 싶은 것을 온 힘을 다해 함께 일궈냈던 소중한 추억의 장소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제 거제는 아이들의 마음을 성인이 되어서도 지킬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가늠해봐야 할 것이다.

꽤 오래 전에 개봉한 영화를 챙겨보게 된 계기는 사실 김희주 작가의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통해셔였다. 저자는 강원도 양양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모델하우스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30분 만에 충동적으로 바닷가 집을 계약하고, 2년 후에 덜컥 서울을 떠났다고 한다. 저자 역시 지역에서 나고 자랐고, 서울에서 다양한 이력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행복하게 일하며 살 환경으로서의 서울에 의문을 품고 있던 터였다. 작가는 남편과 함께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시도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땐뽀걸즈> 이후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 『쓸데없이 찬란한』을 1인 출판사로 기획, 편집한 일이었다.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황이다)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 또한 지역에서 서울로 왔고, 도시재생 연구에 참여하고 직접 겪은 일련의 일들로 인해 소멸되는 지역의 아이들에게 박탈된 기회와 미래가 걱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살펴본다. 이를 통해 ‘지방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지만 사려 깊게 전해진 땐뽀걸즈의 목소리에서 내가 주목한 점은 이들이 평소에 감당하며 살아야 했던 외로움이었다. 가족이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져야 했지만 아이들은 거제에 남아 있어야 했고, 그것을 아는 선생님은 학교에 작은 동물들을 키우고, 각종 과일들의 텃밭을 만들어 학생들이 마음 놓을 공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함께 ‘땐뽀’를 하자고 했다. 그렇다. 많은 것들이 소멸되는 지역에 살기 위해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김희주 저자는 역설적으로(?) 양양에서 다양한 주체들과 협업하며, 그리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쓸데없이 찬란한』을 만들면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나 역시 서울에서 공주로 내려왔다. 소도시에서 다양한 일들을 모의하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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