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국가의 민주주의 체제,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언어, 법, 문화,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우리,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받아들일 수 있는가?

황유담
황유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 단락을 한 번 더 읽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화폐란, 현재 내 지갑 속에, 또는 내 휴대폰 속 통장에 고이 찍혀있는 금액이고, 민주주의 체제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국가의 규범 제정과 우리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분명한 정치체제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당장 지금만 해도 일련의 문자들의 표기로 읽고 있는 이 글에서도 볼 수 있고, 문화는 항상 우리를 묶어주는 하나의 정체성이다.

그런 것들이 모두 ‘허상’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믿을 수 있는가?

내가 이번에 소개할 책은 어디어디의 필독서로 항상 꼽히는 책인 ‘사피엔스’이다. 특히 사피엔스 책 중 3부인 인류의 통합을 중심적으로 앞서 서론에서 언급했던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정리해볼 생각이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을 조금 빌려보자면, 우리는 인지혁명으로 인하여 ‘믿는’ 능력이 생겼다. 그 믿음은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들을 집단으로 묶었고, 그 집단은 사회를 이루어 국가가 되었다. 그 국가 속에서 우리가 이용하는 모든 법, 화폐, 문화 등은 모두 우리의 ‘믿는’ 능력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신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지혁명을 통해 사피엔스가 집단의 이익을 좇기 시작하였고, 이 이익에 대한 방향성은 우리와 그들, 이분법적으로 내 편과 적을 나누게 하였다. 그러나 집단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신뢰가 필요하였는데, 초반에는 친밀감을 바탕으로 충분히 해결이 되었던 이 신뢰가, 이젠 한계에 맞닿게 된 것이다.

이에 사피엔스는 보편적 질서 세 가지를 정립하게 되었고, 이는 지금 우리의 삶의 거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존재하도록 큰 힘을 주었다.

그 세 가지 중 첫 번째는 서론에서도 언급했던 ‘화폐’이다. 화폐 이전에 사피엔스는 물물교환을 통해서 필요한 물건을 얻었는데,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다른 집단과 교역을 하게 되면서, 그 물물교환은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애초에 상대방과 내가 원하는 것을 딱 맞추어 교환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과 장수가 신발과 사과를 교환할 때의 사과의 값이랑, 밀 농부가 신발과 밀을 교환할 때의 밀의 값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에 사람들은 화폐라는 하나의 상상의 산물을 금속덩어리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이를 신뢰하는 국가에서 금속 덩어리에 자신의 서명-돈에 새겨진 문양-을 남기면서 우리 국가는 이 상상적 산물을 모두 신뢰한다는 것을 알렸다. 실제로 돈은 그게 금속 덩어리이든, 종이 쪼가리이든, 길바닥의 돌맹이이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저 모두가 그 물체를 우리의 상상의 산물이라고 믿는다면, 그건 교환의 기준점이 되는 하나의 체제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 뱅킹처럼 말이다. 휴대폰 조작 몇 번이면 나오는 통장 안 그 숫자들, 그것을 과연 실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피엔스
사피엔스

두 번째로 저자가 얘기했던 보편적 질서는 바로 ‘제국’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우리는 지금 제국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집단들을 묶고 있는 하나의 덩어리를 제국이라고 부를 뿐이다.

제국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총 두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첫 번째로는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존재하는 집단을 포함하고 있어야하고, 두 번째로는 국경이 매우 탄력적이고 잠재적으로 어떤 집단이든 자신의 제국 안에 속하게 하려는 속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중국을 생각해보자. 중국은 현재 거의 50개가 넘는 소수민족을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체계로 묶어두고 있으며, 만약 다른 가상의 나라가 중국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면, 중국은 흔쾌히 그 나라를 받아줄 것이고, 이에 국경은 그 가상의 나라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국은 중국과 같이 항상 거대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거시적 측면에서도 조금 작게 시야를 확대해보자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또한 어찌보면 제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역마다 쓰는 방언과-물론 지금은 많이 표준어로 일체화되고 있지만,- 지역문화, 그 지역들의 집단마다 존재하는 정체성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로 묶어놓고 있지 않는가.

저자는 이런 제국들이 단 하나의 세계적인 제국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현재 세계화로 인해 점점 동일시 되어가는 문화들과, 국제 연합, 국제 조직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저자는 기술했다. (이 제국 부분의 내용은 나도 조금 조심스럽게 읽을 정도로 저자의 주관적 사상의 입장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이를 정리하기 위해 최대한 내가 이해한 내용과 여기에서 객관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이론들만 정리했다는 점 참고하길 바란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종교이다. 종교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상’이라고 말한다면 어느정도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기에서 종교는 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도 포함된 개념이다. 이제부터 종교의 흐름을 쭉 따라가보자. 앞서 얘기했던 제국 속의 사회질서와 위계는 매우 취약해서 집단을 질서있게 유지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만약 내가 여러분께 ‘그냥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저 앞 운동장을 반바퀴 뛰어라.’라고 한다면, 이걸 지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처럼 우리 사피엔스는 그 말을 지키게 만드는, 신뢰하게 만드는 타당한 근거가 필요하다. 저자는 그 근거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종교’라고 얘기한다. 종교의 조건은 앞의 제국의 조건과 같이 두 가지로 나타낼 수 있다.

첫 번째는 ‘초인적 질서를 가질 것’, 두 번째는 ‘초인적 질서를 기반으로 스스로 구속력이 있다고 여기는 규범과 가치 설정을 가질 것’이다. 우리가 궁금했던 그 이데올로기들에 대해 말하자면, 종교는 보편적이고 선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데올리기들은 이 특성을 아주 명확하게 갖추고 있으며, 온갖 예언서, 기념일, 축제 등을 가지고 있다. 공산주의를 예를 들어보자.

공산주의에서는 프롤레타리아의 궁극적 승리와 함께 역사는 곧 종말을 맞을 것이라 예언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있고, 5월 1일 노동절과 10월 혁명 기념일 등이 있다.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에 능통한 신학자들이 존재하며, 심지어 이단 또한 존재한다. 결국 이데올로기도 하나의 종교라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상상의 산물을 신뢰하며, 문화를 형성하고, 또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국가도, 국가 내에서 쓰고 있는 언어도, 화폐도, 법도, 정치사상까지도 전부 호모 사피엔스의 상상의 산물이다. 이런 점에서 사피엔스의 믿는 능력은 신체적으로 아무 뛰어난 점이 없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을, 수많은 생명이 멸종하고 다시 나타날 동안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으며, 그 어떤 생물보다도 지식을 축적하고, 문명을 발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현재 그 대단함이 상상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임을 명심하고, 우리의 상상이 그만큼 얼마나 커다란 존재를 바꿀 수 있는지 깨달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각자 개개인의 상상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소중한, 가치 있는 것임을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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