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시작된 경제보복이 백색국가 제외, 한일군사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로 치달으면서 역대 최악의 국면을 맞은 가운데 출판계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포착됐다. 일본 문예지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 작가들의 단편과 대담을 게재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출판사 가와데쇼보신샤는 계간 문예지 문예’ 2019년 가을호를 펴냈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와 함께 문예지는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적인 일본에 통쾌한 일갈을 펴낸 게 이색적이다. 그 덕분에 1933년 창간호 후 무려 86년 만에 처음 두 차례 긴급 증쇄를 하기도 했다.

'한국·페미니즘·일본' 특집으로 꾸며진 이번호에선 특히 한국 문단이 고심하는 페미니즘에 그 초점이 맞춰진다. 여기에 더해 이를 일본 문학과의 연결 지점이 어딜 지를 고민한다. 한강과 조남주, 박솔뫼, 박민규 등 국내 중견작가들의 단편 소설과 재일문학론, 한국여성문학사 등을 소논문 형태로 실은 문예지는 이미 발매 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연신 화제를 모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달 5일 출간과 함께 당일 매진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까지 14000부가 팔린 문예지는 단행본 출간도 앞두고 있다. 사카가미 요코 편집장은 반향이 너무 커 놀랐다이번에 문예지를 처음 샀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 지금까지 손에 잡히지 않던 독자층이 닿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문예의 히트 배경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체로 일본 문학계 내에 부는 한국 문학 붐, 페미니즘 관심 고조가 그 배경으로 진단된다. 문학비평가 구라모토 사오리는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정치와 문화는 별개"라며 "한일 관계가 악화됐다고 문화적으로 단절되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