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이춘풍전(李春風傳)’의 창작 시점이 1900년 전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열린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와 한국어문교육연구회 학술대회에서 한국 고전소설의 권위자인 김준형 교수가 내놓은 이야기인데 기존에 알려졌던 제작 시점인 조선후기와는 다른 부분인 점이 꽤나 흥미롭다.

이춘풍전은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여성을 능동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작자 미상, 창작 시점도 확실치 않다. 주인공 이춘풍이 조선 숙종 때 인물이라는 이유로 18세기 무렵인 영·정조 때 소설로 여겨져 왔다. 특히 해방 직후 이명선 전 서울대 교수가 소설을 조선 이야기책의 새로운 경지라며 천편일률적 이야기 책과는 다르다고 평가할 정도로 문학계에선 남다르게 인식돼 온 소설이다.

그런데 최근 남준여걸과 이춘풍전을 주제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 김 교수는 이 소설은 학계 통념보다 늦은 시기에 완성된 작품이라며 기존에 알려진 시기와 다른 1900년 전후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이본(異本) 존재 양상, 그리고 유사한 작품 비교를 통해 창작 시기를 새롭게 추정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이춘풍전은 모두 28종인데 이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필사된 것은 성산 장덕순본으로 필사 시기가 1905, 나머지는 19091957년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1900년 이전에 필사한 이춘풍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현존하는 이본은 1970년을 전후해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장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또 다른 근거로 판소리 무숙이타령사설을 적은 게우사에 주목했다. 게우사는 지난 1992년 김종철 서울대 교수가 1890년 필사한 자료를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게우사의 줄거리는 이춘풍전과 유사하다. 무숙이가 평양 기생인 의양에 빠져 재산을 잃고 그의 집에서 심부름한다는 내용이 그렇다. 다만 이춘풍전은 게우사에서 주변부에 놓인 주인공의 어진 아내를 부각하고 착한 기생 의양이를 나쁜 기생 추월로 바꾼 점이 다르다. 김 교수는 서사구조 유사성, 등장인물 동일성의 두 요인은 이들 작품이 같은 뿌리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셈이라며 이춘풍전은 게우사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그 방향이 노골적인 가족이라는 근대적 사유로 귀결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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