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초반부는 원작으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의 이야기는 물론 정서와 분위기까지, 비교적 하루키의 스타일을 잘 재현해냈다는 느낌을 준다. 연극배우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각본가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카). 가후쿠가 출장 일정이 지연되어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맺고 있는 광경을 발견한다. 하지만 가후쿠는 이유를 묻지 않고 그대로 집을 빠져나온다. 그렇게 해서라도 오토와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그가 아내의 외도를 알고 있고, 오토 또한 남편이 자신의 외도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사실 또한 가후쿠가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어느 날, 오토는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목진태 블루프린트북 대표
목진태 블루프린트북 대표

무려(?) 50분이 이어지는 이 이야기가 영화의 초반부다, 그리고 영화의 타이틀 크레딧이 떠오른다. 이를 기점으로 하마구치 류스케의 풍성한 각색으로부터 힘을 얻은 영화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오토를 잃고 2년 후, 가후쿠는 히로시마 연극제에 초청되어 자신이 주로 연기하던 연극 <바냐 아저씨>의 연출을 맡는다. 그리고 타지에서 자신의 빨간색 컨버터블 사브(원작에선 노란색)를 운전해줄 전속 기사 ‘미사키’를 만난다. 다중의 언어로 연극을 연출했던 가후쿠는, 이번에도 다양한 국가와 배경의 사람들을 캐스팅한다. 오디션 참여자 중에 오토의 정부로 짐작되는 다카츠키를 만나지만, 가후쿠는 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상실을 직면하고 극복하게 된다.

원작이 워낙 짧은 분량의 소설이기에, 전사를 부여하여 인물의 깊이를 더한 태도에 대해 두 창작자와 작품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루키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어느 부분을 자신이 썼는지 모를만큼 영화를 즐겼다는 후문이다) <아사코>, <해피아워> 등의 작품으로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 선 하마구치 류스케가 원작을 통과하며 자신의 문제의식을 지속시킨 방식이 중요할 것이다.

우선 소설과 영화가 공명하는 부분은 상실을 고통일 것이다. 소설의 가후쿠는 아내의 상실에 괴로워하면서도 그녀의 외도, 아내라는 사람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는 하루키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조응하며,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는 무력감, 그리고 그 시도 자체가 덧없음을 강조한다. 가후쿠는 다카츠키와의 대화를 통해 이를 깨닫는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이 상실의 풍경을 조금 다르게 그린다. 원작의 아내(원작에는 아내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급성암으로 고통을 받다 죽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영화의 오토가 지주막하출혈로 맞이한 죽음은 느닷없이 느껴진다. 그리고 가후쿠 개인의 상실과 더불어 운전기사 미사키, 다카츠키 등에게 사연을 부여하며, 적어도 이야기 안에서 상실로 인한 마음의 풍경을 보편화한다. <아사코>에서 갑작스레 ‘바쿠’를 잃은 ‘아사코’처럼.

드라이브 마이 카
드라이브 마이 카

 

하지만 영화가 우리의 마음과 조응하는 것은 오로지 ‘고통’에 있지만은 않다. 영화에서의 상실은 동일본대지진(<아사코>), 팬데믹(<드라이브 마이 카>)처럼 우리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고, 느닷없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침잠한 마음의 풍경 안에 있다. 지금의 세계는 불안정한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오토가 녹음해준 <바냐 아저씨> 테이프를 사별 이후에도 끊임없이 듣고 연습하지만, 더 이상 ‘바냐’ 역을 맡을 수 없다는 가후쿠의 모순된 태도 속에서, 상실의 사태 속에서 존재의 혼란을 겪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하루키보다 적어도 동시대성의 면에 더 근접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각색의 또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로부터 (일시적인) 해답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극중 이유나(박유림)가 아름다운 수화로 표현한 ‘소냐’의 대사에는 인간의 상처를 보듬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직접적으로 담겨 있다.

"삼촌,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 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예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그리고 무덤 너머 저세상으로 가서 말하기로 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었고 슬퍼했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하느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실 테죠. 아, 그날이 오면, 사랑하는 삼촌, 우리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될 거예요. 기쁜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겪었던 우리의 슬픔을 돌아보며 따스한 미소를 짓게 될 거예요. 그리고 마침내 우린 쉴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믿어요,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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