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새끼 바다거북의 항문에서 길쭉한 비닐이 나오고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비닐이 조금씩 몸 밖으로 나올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며 움찔거리는 거북이 몸속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무려 46개나 있었다고 한다.

세계 반대편에서, 더구나 인간이 아닌 바다거북이 쓰레기로 인해 받고 있는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즉 환경문제는, 그것의 심각성은 뉴스나 광고를 통해 적지 않게 우리 사회에 표출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으며 개개인은 딱히 그 문제에 대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이세정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이세정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환경문제’라는 표현이 오히려 자연을 우리 삶의 바탕으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며, 자기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를 너무나 간단히 자기의 삶과 따로 떼어서 생각하는 경향을 갖게 만든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 중립적 개념은 환경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분리시키고 상호 연관성을 부인하도록 만든다. 그런 이유로 나는 ‘환경문제’ 대신 ‘생활공간 문제’라고 말하는 것을 더 선호하며, 이게 훨씬 더 논리적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은 환경문제를 당장 우리 주변의 생활공간으로 시선을 돌리고 가족과 함께 ‘플라스틱 없는 집’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그 과정을 책에 담았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환경을 위해 힘썼던 건 아니다. 그 역시 유행에 이끌려 새것을 좇아 사고 싫증이 나면 바로 버리는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것이 환경을 위한 옳은 행동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지만 차마 실천으로 옮기기엔 귀찮고 망설여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베르너 보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행성 plastic planet>에서 지구를 뒤덮은 플라스틱의 적나라한 모습을 목격하고 산드라는 더 이상 이전과 똑같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산드라는 가족과 함께 한 달 동안 플라스틱 없는 집을 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당장 손을 뻗으면 닿는 것이 플라스틱인 세상에서 플라스틱 없는 삶이 가능할까.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있어 없으면 안 되는 것이 곧 플라스틱이기도 하다. 식자재를 사기 위해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포장 비닐을 어쩔 수 없이 구매해야 하며, 플라스틱 용기를 대체할 유리 용기의 뚜껑에도 플라스틱 재질의 패킹이 붙어있으니 플라스틱은 우리 사회에서 필수 불가결하다. 산드라 역시 프로젝트를 시작하자마자 이 문제에 당면했고 이내 ‘우리 실험은 그 수많은 플라스틱 없이도,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겠지만 여전히 즐겁고 유쾌하게, 사회에서 외톨이가 될 필요 없이, 그것도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입증해야함’을 깨닫는다. 즉 100% 플라스틱이 없는 삶은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그 사용을 줄여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나는 우리의 실험이 어디까지나 서방 문명사회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활 가운데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조금 특별한 행동’이기를 바랐다.

너무 높은 기대수준을 내세우는 바람에 우리의 일상이 부담스러워지거나 생활 가운데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을 빼앗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책의 제목만 봤을 땐 다소 극단적으로 느껴졌다. 앞서 언급한 대로 플라스틱이 없는 삶은 우리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범위 그 이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작가는 가족 구성원에게 의견을 묻고 주변 공동체, 나아가 사회에서의 적절한 타협과 설득을 거쳐 가며 현실적인 방향으로 그의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갔다.

 

책을 읽으며 평소 내가 배출하는 쓰레기를 하나씩 따져 보았다. 산드라와 나는 비슷한 가치관을 따르고 있지만 ‘실행력’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나 역시 평소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에 대한 남모를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내가 한 일은 그저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마저도 텀블러를 집에 두고 와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 결코 환경을 위한 올바른 행동이 아님을 알지만 음식을 포장해 갈 때 불필요한 비닐을 사용하고, 대체품이 많지만 그저 예쁘다는 이유로 사버린 플라스틱 상자들은 나의 작은 자취방을 플라스틱 더미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가치관을 중심으로 산드라와 나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작가가 프로젝트를 위해 주변의 비아냥거리는 시선을 견뎌내고 끊임없이 노력한 과정을 곱씹어보면서 평소 나의 생활 습관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고, 나름 환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스스로에게 엄청난 부끄러움을 느꼈다. 물론 저자도 말했듯 크게 무언가를 바꾸려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내가 밟고 있는 길의 방향을 돌려 (물론 그의 호흡을 맞출 순 없겠지만) 산드라가 밟아 온 과정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것. 그것이 ‘플라스틱 없는 집’ 프로젝트의 목적이자 작가가 궁극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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