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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미 소설가
김해미 소설가

문학과 미술, 음악 등 경계를 넘어선 예술가들의 교류는 치열하고도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글과 그림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어 뜨거운 교감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소설가 김해미 씨가 그 주인공이다. 글을 쓰는 문학인과 그림을 그리는 미술인의 표현방식은 문자와 이미지로 다르지만 김 씨는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시대와 삶을 예술이란 공통분모로 묶어낸다. 지적 연대감 속에 서로의 예술혼을 자극하고, 영감을 주고받으며 이 시대 문학의 깊이를 더욱 진하게 만들고 있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김 씨는 개성이 강하고 타고난 재능을 가진 다섯 언니와 오빠 사이에서 나고 자랐다. 그들은 각자의 꿈이 있었지만, 어른들의 반대와 어려운 가정형편이란 가파른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하지만 문학인을 꿈꾸던 한 소녀의 열정은 꺾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좇아 지난 1993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하며 소설가라는 이름을 결국 얻어 냈다.

등단 후 자신의 책을 품에 안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소설가란 타이틀을 얻은 후 23년이 2016년이 돼서야 첫 창작집 ‘좋은 그림 찾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 여덟 명의 화가와 함께 저서를 준비했던 김 씨는 “‘좋은 그림 찾기’를 출간했을 때 아예 ‘10편의 소설/ 10폭의 그림/ 8인의 화가와 함께 좋은 그림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부제를 달았어요. 정식으로 원화 그림을 콜라보(Collaboration)한 셈이죠. 글 못지 않게, 스스로 발품을 팔아 소설에 어울리는 그림을 찾아 화랑을 헤매고, 화가들을 설득해 특별한 창작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지인들은 ‘그림의 여운이 강해 독자들이 소설의 진가를 놓칠까 우려된다’고 걱정했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글과 그림의 비율에 고민하던 김 씨는 5년 만에 최근 두 번째 소설집 ‘십자가 살인사건’을 펴냈다. 그는 친오빠인 재미화가 김여성 화백의 그림을 책 곳곳에 녹여내 또 한 번 미술과 문학의 만남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김 씨는 “이번엔 표지화만 사용하려 했는데 오빠가 보내준 그림들이 제 소설과 너무 잘 맞아 또 욕심을 부렸어요. 소설 한 편마다 비구상회화 한 점씩을 넣었죠. 가능하면 독자들이 문학과 미술작품을 연결해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 오빠의 작품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가진 그림에 대한 친밀감 탓이 큰 것 같아요. 미술교육 전공자의 배려라고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웃음 지었다.

김 씨는 약 20년 전쯤 신문을 통해 ‘십자가 살인사건’이란 제목의 기사를 접하게 됐다. 당시 그 사건에 큰 관심을 가졌지만 별다른 후속기사가 이어지지 않아 마음 한구석에 이 사건을 담아뒀다. 글을 쓰기 좋은 소재임에도 겁이 났던 탓이다. 그는 “세월이 흘러 그만한 연륜이 생겼기에 이 사건을 다시 소설로 구성했어요. 감히 입에 담지도 못할 충격적인 사건이 가득한 요즘 경계로 삼을 만한 소재를 다뤄 독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경각심을 주고 싶었습니다. 또 바른 신앙이란 어떤 것일까, 종교란 무엇일까 하는 것을 독자들과 함께 다시 생각해봤죠”라고 힘줘 말했다.

십자가 살인사건 속엔 중·단편 소설 여섯 편이 실렸다. 두 편은 종교와 관련된 것이고, 네 편이 그림 그리는 이의 이야기다. 종합해보면 무엇인가에 열중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글로 풀어낸 것이다. 김 씨는 “우리 인간은 종교든, 예술이든, 취미생활이든, 각자에게 맞는 무엇인가에 집중해 살아야 행복감을 느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삶이란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에 대한 답이 아닐까요”라고 단언했다.

40대의 나이에 등단한 김 씨는 아직도 문학에 대한 갈증을 다 해소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스스로 흡족한 작품도, 타인에게 인정받은 작품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아직 기대를 버리지 못한 탓이 큽니다. 신이 허락하는 시간까지 열심히 펜을 잡으면 반드시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있어요. 누구에게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그러면서도 깊이가 있는 소설 같은 거죠. 오랫동안 구상한 종교 이야기와 다른 누군가가 다루지 않은 독특한 소재를 장편소설로 풀어내고 싶습니다”라고 희망했다.

그는 소설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 씨는 “소설은 이야기가 되는 모든 걸 무한정 엮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반면 지구력이 있고 영(靈)과 육(肉)이 건강해야 오래 버틸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죠. 앞으로 쉽게 잊혀지고, 버려지는 시대에 소장 가치가 높은 소설을 쓰고 싶어요. 책을 덮은 후 그 여운을 가지고 바로 미술관으로 달려간다면 더욱 좋겠죠. 제 소설책 덕분에 독자에게 심미안이 생긴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습니다”라고 소망했다.

◆ 김해미 소설가는?

김 소설가는 지난 195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을 통해 등단했다.

2016년 대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첫 창작집 ‘좋은 그림 찾기’로 대전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특히 남편은 서예, 자녀들이 아트와 조각, 디자인으로 온 가족이 모두 활발하게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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