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하 기자
안민하 기자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 단어의 창조자를 찰스 다윈으로, 그 의미를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즈음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종의 기원’ 5판에서나 등장할 뿐만 아니라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는다’는 뜻에 불과하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두 저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적자생존에 대한 오해를 풀어내는 것으로 엉킨 실타래의 끝을 짚는다. 적자생존의 창시자로 오인받는 다윈은 오히려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보았다는 해명을 단초로 꿰어 자연에서 살아남는 것은 ‘최적자’가 아닌 ‘다정한 자’라는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수놓아 간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기술 좋은 사냥꾼이던 네안데르탈인과 질긴 전사였던 호모 에렉투스를 제치고 유일한 인간 종이 된 비결은 다름 아닌 친화력이다. 친화력은 모든 가축화된 종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대표적 예시로는 인간과의 공존을 선택해 스스로를 가축화한 개가 있다. 이런 자기가축화가 호모 사피엔스에게도 발생했다고 본 저자들은 인간 종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같은 논리로 친화력은 동전의 한쪽 면이기도 하다. 그 반대쪽에 위치한 것은 나, 혹은 내가 속한 집단의 외부인을 향한 적대감일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류가 다른 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면서 생존에 대한 위협은 외부에서 내부로 거처를 옮겼다. 현재 인간과 가장 많은 갈등을 일으키는 종은 인간,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 역시 인간이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할 때 그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 된다. 그런 자들은 공격해도 무방해진다. 규칙도, 규범도,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도덕적 판단도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을 더 좋아한다고 설명한다. 인간 자기가축화 설을 적용해 풀어 보자면 인간은 자신의 집단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외부자들에게 공격성을 보이며, 이런 현상이 타인에 대한 ‘비인간화’다. 타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는 나와 다른 것을 열등한 것, 멸시해도 괜찮은 것으로 정당화한다. 인종 차별, 종교 탄압, 우생학, 반대 정당에 대한 비난 등 서로가 서로를, 집단이 집단을 비인간화하는 유구한 행위들은 사람 종 사이에 깊은 골을 새겨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 자기가축화 설은 그 자체로 양면성에 대한 해결책이라 저자들은 말한다. 예를 들어 대안우파의 사람들은 동성애자, 흑인 재소자, 이민자, 노숙자 등 소수자와 접촉할 수록 관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의 생존을 도왔던 유럽인들 대부분이 전쟁 전 유대인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접촉과 교류가 잦을수록 나를 비인간화하는 대상을 마주 비인간화하는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배척과 혐오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책의 논리대로라면 다정함은 그 무엇도 깎아낼 수 없는 우리의 본능이다. 세분화된 혐오와 차별의 시대에서 다정함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라 말하다니, 결국 유력한 가설 중 하나일 뿐임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속는 셈 치고 한 번 믿어 보자. 마음 한 켠에 자리한 배척과 배제의 자리에 교류와 접촉을 앉혀 보자. 하다못해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라도 다정해져 보자. 우리의 가장 예리한 무기를 녹슬게 두지 말자. 왜냐 하면 시간이 언젠가는 다정한 자들이, 다정한 자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을 판별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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