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둘러싼 자연계를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당신이 몸담고 살게 될 세계의 종류가 결정된다.

지구상에 인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자연의 현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라는 렌즈를 통해 현재를 봐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예은
이예은

잃어버린 야생에 대해 말할 때, 그 ‘야생’의 기준을 어디서부터 세울 것인가. 파괴된 자연을 ‘정상’상태로 복구하는 일, 거기서 말하는 ‘정상’이라는 것은 어떠한 상태인가. 책장을 넘기며 얼마나 많은 동식물이 사라졌는지, 또 얼마나 많은 곤충이, 생명이 사라졌는지 아마 그 수와 종류는 책에 실린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책에 나오는 이미 사라진, 혹은 사라지고 있는 종들의 이름은 너무나 생소하였고, 오히려 나는 이런 세상이 있었나, 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삶은 너무나 윤택해졌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나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과학과 기술의 기반 아래 현재에도 살아가고 있음은 다르지 않다. 내가 경험한 자연은 너무나 한정적이고, 작은 범주에 속해서, 지금까지의 나는 내가 자연친화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이미 COVID-19라는 전염병으로 우리의 삶의 형태는 많이 달라졌고, 기후변화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때, 지구는 많이 아프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상의 종말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어떤 삶의 형태로, 어떤 기준으로 내 삶을 변화 시켜 가야할까. 어떤 눈을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내가 지구에 머무는 동안, 내 삶이 더 좋은 일을 하려 애쓰기보다, 덜 해하는 삶을 살게 될까 라는 생각. 누군가 말했다.

자연에 대해 아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어쩌면 그 ‘앎’은 내 삶의 형태를 너무나 변화시켜서 나는 결국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이다. 당신의 선택은 그것을 알기 전과 같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책에서 내가 놀랐던 점은, 흔히 우리가 자연복구의 기준을 정할 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 세대에서 가장 좋았던 자연의 상태(대부분 어린 시절)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세대가 밑으로 갈수록 복구의 기준이 되는 자연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는 것이고, 우리보다 더 어린 세대들은 그 기준을 세우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꽤 심각한 일이어서 미래의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해 알려줄 때, 우리는 어떤 형태와 어떤 시각을 전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그것은 아마 나의 시간을 사는 동안, 어떤 책임감일 것이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야생화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그 꽃을 보느냐, 보지 않느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지금의 삶을 모두 포기하고, 야생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나,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 누누이 강조하는 ‘아는 것’, ‘알아나가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러다보면 우리는 많은 순간에서 이미 나의 시야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관심을 가지다보면 자연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 쇠퇴하는 자연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자연은 과거의 모습과 달라졌지만 아직 사라지지는 않았고, 많은 생명이 여전히 위태로움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생명들이 살아나가는 모습은 생동감 넘치고 풍요로우며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볼 때 그 속의 경이로움을 읽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 야생의 풍경은 텅 빈 상태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서,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이 더 많은 자연을 가까이 추구하도록 우리를 자극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잃어가는 중인 야생을 찾아가도록.

잃어버린 야생을 찾아서
잃어버린 야생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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