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러너'

이 이름이 생소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울트라 러너는 마라토너 보다 더 먼거리를 뛰는 러너를 말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라톤의 유래는 기원전 490년경 그리스의 소규모 군대가 숫자상 월등히 우세했던 페르시아 점령군과의 아테네 전투에서 승리한 뒤, 연락병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가 아테네까지 달려가 "우리가 이겼다!"라고 외치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가 목숨을 걸고 승전보를 전하려 달려 온 거리가 마라톤이다.

신현종<br>(조선일보 사진부기자)
신현종
(조선일보 사진부기자)

그러나 마라톤의 이런 유래는 사실이 아니다. 페이디피데스는 스파르타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파견된 전령이었으며, 잘 살아서 돌아갔다고 한다. 전장이었던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의 거리도 40km 정도가 아니라  36.75 km다. 이 후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42,195km로 마라톤의 거리가 조정되었다. 당시 마라톤은 대략 40km 정도가 암묵적인 룰이었는데, 런던 올림픽에서의 거리가 공식화 된 이유는 단지 런던 마라톤이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영국 왕실의 공주가 마라톤을 직관하고 싶어서 선수들이 윈저궁 앞으로 지나가도록 임의로 코스를 늘려서가 아니다.

많은 것이 사실과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가 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42,195km의 거리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거리라는 데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 보병의 갑옷과 무기의 무게가 33kg 정도라고 하니 완전 군장을 하고 그 먼거리를 달려왔다면 생사를 걸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 후에도 마라톤은 오랜 역사에 비해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는 아니었다. 그렇게 먼 거리를 달리며 훈련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을 뿐더러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의 모습을 잠시 밖에 볼 수 없었기에 구경꾼들에게 인기있는 스포츠도 아니었다. 1970년대 산업이 발전하고 시민들 사이에 피트니스 문화가 시작되면서 마라톤은 오늘 날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서두에 마라톤에 대해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마라톤이라는 스포츠가 가지는 위대함과 절실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일단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면 대략 4kg 정도의 체중 감량이 일어난다. 그만큼 신체에 가해지는 데미지가 크다. 그렇기에 오랜 연습 기간이 없으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나는 소위 말하는 방구석 마니아다. 건강검진을 하고 나서 공단에서 <암보다 무서운 운동부족 병>이라는 책자를 받은 적도 있다. 그만큼 운동량이 없다는 소리다. 방구석에서 모든 일상을 해결하는 나이기에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42,195km를 완주하는 마라토너들을 정말 마음 깊이 존경한다. 그런데 저자인 심재덕 러너같은 경우는 마라토너인 동시에 '울트라 러너'다. 러너 앞에 울트라가 붙은 이유는 그들이 달리는 거리가 마라톤 보다 더 멀기 때문이다.  50km, 100km는 기본이고 심지어 200km도 뛴다. 처음 200km 레이스에 관해 들었을 때는 과연 그것이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거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자신의 능력을 닦고, 조이고 노력한다고 해도 무려 200km를 달린다니 인간의 열정과 의지는 그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엄청난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저자는 '울트라 러너'이자 '트레일 러너'다. 트레일 러닝이란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나 트랙이 아닌 산이나 초원, 숲길 등 자연 속을 달리는 운동을 말한다. 심지어 사막을 달리기도 한다.(울트라 러닝의 대다수는 트레일 러닝이기도 하다) 마라톤의 거리를 넘어 울트라의 거리를 산 속에서 소화한다는 건 듣고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이러한 호기심 속에 펼친 심재덕 러너의 이야기는 노력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어 100km, 200km 까지 가는 길고 긴 인고의 이야기였다.

나는 울트라 러너다
나는 울트라 러너다

 

심재덕 러너는 첩첩산중에 화전민이 일구어 만든 작은 마을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당시의 많은 이들이 그랬듯 언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지 모르는 비포장 도로를 걷고 뛰어 가며 학교를 다녔다. 방과 후에는 산에서 뱀을 잡아 독에 넣어 두었다가 오일장이 되면 뱀 장수에게 팔았는데, 독사를 잡으면 일반 뱀보다 2배는 더 쳐 주었기에 까치독사와 능구렁이 등을 열심히 잡기도 했다. 이렇게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고, 부모님을 도와 농삿일을 하고, 장작을 패고, 쇠꼴을 한 짐씩 지어나르며 자란 유년의 체험은 그가 훌륭한 러너가 되는 좋은 자양분이 됐다. 고등학교는 증평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았기에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다른 곳보다 급여 조건이 좋은 대우조선에 입사 해 거제도에 자리를 잡았다. 이 후 지금까지도 대우조선에서 근속하고 있다.

조선소의 일은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할만큼 일의 강도가 높았다.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몸과 정신력으로 힘든 시간을 성실히 버텼지만, 조선소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어느 순간 숨을 쉬기 곤란할 정도로 그의 건강을 망쳐 놓았다. 숨쉬기가 힘들어 간 병원에서 받은 병명은 '기관지 확장증'이었다. 기관지가 넓어져 호흡이 원활히 되지 않았던 것이다. 넓어진 기관지를 잘라내고 다시 잇는 수술을 해야 했지만 수술 후에도 완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병원을 나서며 처방 받은 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는 기관지확장증 외에 후각 장애도 갖고 있다. 잠수함 건조시 방독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했지만 FRP 수지와 공업용 아세톤, 신나, 페인트, 리무버 등의 유기용제에 그대로 노출되어 오랜시간을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후각이 망가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편하게 숨을 쉬고 냄새을 맡는 일상이 그에게는 너무나 큰 소망이었던 것이다. 이쯤되면 그의 건강을 앗아간 조선소의 일이 원망스러울 법 한데도 그는 자신의 가난을 벗게 해 준 소중한 직장이기에 자기 삶에 주어진 모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다.

그의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는 기관지확장증도 운동을 통해 고쳐 보리라 마음먹게 된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기 전 근처 초등학교에서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운동 후 가벼운 몸으로 샤워를 하는 것은 상쾌했으나 매일 코피가 쏟아 졌다. '달리는 것이 나와 맞지 않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어느 순간 코피가 조금씩 잦아 들면서 몸이 달리기에 적응해갔다. 그러던 중 운동을 시작하고 4개월 후 노동절 행사에서 부서별 단축 마라톤에  참가하고, 자신이 달리기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후 그는 체육대회의 10km 단축 마라톤에서 모든이들을 제치고 당당히 1등을 한다. 1등이라는 환희는 생각보다 너무나 달콤한 것이었다. 이렇게 그의 달리기 인생이 시작됐다.

그 후로도 그는 쉬지 않고 달리기를 이어 갔고 어느 순간 몸이 달리기에 적합한 몸으로 바뀌어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뒤에는 호흡이 좋아져 정상 생활이 가능했지만, 2003년 만34세 체력 측정 검사를 받은 결과는 같은 연령대의 평균 폐활량과 비교했을 때 69.5% 밖에 안된다는 것이었다. 즉 아직도 정상보다는 한 참 부족한 호흡 상태였던 것이다. 이러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하겠다'는 마음으로 점점 더 먼거리를 달렸다.

1995년 일반인도 풀코스에 참가할 수 있는 춘천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첫 마라톤 풀코스의 도전이었다. 가을날 춘천 의암호 주변의 아름다운 길을 달렸지만 풍경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린 이 마라톤에서 그는 2시간 39분 05초의 기록으로 생애 첫 풀코스 도전을 이뤄냈다. 전체 3위였다. 마라톤을 완주하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 왔다.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해서 주변의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순간 그에게는 세상의 어떤 고난과 역경도 헤쳐나갈 자신감이 꿈틀거렸다.

평소 마라톤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2시간 40분안에 풀코스를 완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모를 수 있다. 3시간 안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을 sub 3(서브 쓰리)라고 한다. 이러한 별칭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꿈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평생을 노력해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만큼 어려운 기록이다.  sub 3에 도달하려면 1km를 평균 4분 페이스로 일정하게 달려야 가능한데 4분 페이스 기준으로 계산하면 2시간 49분이 나온다. 동호인들 중에는 최고 기록이 3시간 1분이나 2분인 경우도 있는데 평생을 노력해도 끝내  sub 3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아는 지인 중에도 최고 기록이 3시간 1분대인 분이 있었는데 다음 대회에서  sub 3를 이뤄내고자 무리하여 막판 스퍼트를 하다가 결승선 근처에서 쓰러져 크게 위험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마라톤에 첫 풀코스 도전에 sub 3도 아닌 2시간 39분의 기록을 냈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수치다. 더더군다나 그는 숨쉬기도 힘든 기관지확장증 환자였다.

그의 끝없는 노력은 한국인 최초로 2008년 sub 3 100회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2018년 1월 28일에는바람이 세차게 부는 한강변에서 sub 3 300회를 달성했다. 지독한 열정이 대기록을 만든 것이다. 마라톤 첫 완주부터  sub 3 100회를 달성하기까지는 14년이 걸렸고, 200회와 300회 달성은 각 4년 반의 시간이 소요됐다.

2001년에는 첫 트레일 러닝에 도전했다.  우리나라에는 '산악 마라톤'으로 소개되며 '트레일 러닝'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어릴 적 산을 놀이 삼아 뛰어 다니던 그에게 트레일 러닝은 낯선 분야가 아니었다. 험준한 산의 지형을 파악하고 산을 오르고 달리는 능력은 스피드에 강한 지구력까지 갖춘 그에게 딱 맞는 종목이었다. 마라톤을 넘어 트레일 러닝에 울트라의 거리까지 더해진 '울트라 트레일 러닝'은 말 그대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철의 시험대였다.

트레일 러너로서의 꾸준한 노력 끝에 2005년에는 일본에서 개최되는 '노베야마 고원 울트라 마라톤' 100km에 도전했다. 8시간 04분 32초의 기록으로 무명의 그는 세계 무대에서 우승을 하는 쾌거를 이뤄낸다. 그는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위너였지만 그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세계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단련하고 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직장에 매인 몸이다 보니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것이 수월치 않았다. 해외로 나가는 경비도 상당한데다, 무엇보다 빠듯한 일정으로 장거리를 이동해 목적지에 도착하자 마자 숙면도 취하지 못하고 철의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여기에 대회들이 대부분 산악 지형에서 이루어 지다보니 자유롭지 않은 언어로 낯선 곳까지 시간 내에 찾아가야만 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더해 주말을 온통 달리는 데에만 쓰다보니 북경 마라톤에 참석했을 때는 '한국에 돌아오면 이혼할 각오를 하라'는 아내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어려움은 오직 달리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는 그를 막지 못했다.

달리기에 대한 끊임없는 염원은 그를 울트라 마라톤의 세계에 깊이 빠트렸다. 처음 울트라 마라톤을 접했을 때 그도 엄청난 거리가 주는 공포감에 힘들었음 토로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울트라 마라톤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유는  '행복한 고통을  보다 오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달리면 달릴수록 더 먼 거리에 도전하고 싶은 특별한 끌림이 그를 도 다시 달리게 했다. 나같은 비러너들은 그가 말하는 행복감을 아득히 미루어 짐작할 뿐이지만, 그 자신도 말했듯 '사서 고생하는' 러너들의 고독한 레이스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역시나 들지 않는다.

세계로 향한 그의 발걸음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트레일 러닝의 종주국 미국으로 향했다. 바로 세계적인 권위의  MMT 100(Massanutten Mountain Trails 100mile Run) 에 참가한 것인데, 17시간 40분 45초라는 대기록으로  2006 MMT 100의 우승자가 된다. 미국 트레일런 대회의 한국인 최초 우승자일 뿐만 아니라  MMT 100 역사상 최고의 기록으로, 현재까지 그 누구도 바꾸지 못한 전설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후 일본 최고의 울트라트레일 러닝 대회인 '하세쓰네 컵'을 역대 대회 최고 기록으로 우승하는 등 그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그는 책에 자신만의 달리기 비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었는데 어깨를 이용해서 달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어떤 지형에서는 무슨 주법을 써야 효과적인지 알려주고 있다. 달리기에 관해 자신이 깨닫고 얻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고 있는 것이다.

심재덕 러너가 우리나라 최고의 러너를 넘어 세계 최고의 러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신체의 강점도, 좋은 훈련을 받은 덕분도 아니었다. 오직 살기 위해 자신의 병을 고쳐보고자 했던 그의 굳은 의지, 매달 600km 이상을 달리는 꾸준한 노력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그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의 책을 읽고 느낀 한가지는 그가 이뤄 낸 이 엄청난 쾌거를 부러워 할 자격이 나에게 있나 하는 것이었다. 그가 부럽다면 누구나 그만큼 노력하면 된다. 지금 자신이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다면 적어도 그가 시작할 때 보다 더 우월한 상태이니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의 노력이 얼마나 꾸준하고 깊은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는 말한다. 

『잘 달린다고 해서 호흡을 편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훈련을 통해 고통을 오래 견딜 수 있게 만든것 뿐이다. 한계를 넘어도 쓰러지지 않고 달리는 것은 고통을 정신으로 이겨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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