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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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 안민하 기자
  • 승인 2021.11.2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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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노키즈존이 범람하는 시대다. 
정정한다. 노키즈존이 범람하는 ‘나라’다. 

‘노키즈존(No Kids Zone)'이란 말 그대로 어린이의 출입이 제한되는 공간이다. 식당, 카페 등 요식업체의 비율이 높으며 제한 연령은 만 13세까지가 보통이다. 주로 내세우는 논리는 ’다른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서‘. 여기까지는, 일단 좋다. 어린이가 잘 울고 쉽게 칭얼거리고 어른에 비해 말썽을 피울 가능성이 높은 개체라는 인식은 꽤 보편적이니까. 

“하지만 어린이는 사회 바깥에서 다 자란 다음 사회에 배치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어린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 속에서 자란다.”

‘어린이라는 세계’의 한 구절이다. 온점 대신 느낌표를 몇 개씩 찍고 싶을 만큼 동의한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 단 한 번도 울거나 칭얼거리거나 말썽을 피우지 않고 자라는 아이가 존재하는가? 애초에 그런 조숙함은 어린아이에게 요구해도 되는 미덕이 못 된다. 저자의 말처럼 예의 바른 어린이는 갑자기 쑥 솟아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사회화를 거쳐 탄생하기 때문이다. 인권과 차별이 꽤 가시화된 시대건만 이 나라는 어째 점점 아이들에게 유독 박해지는 것 같다. 

아이에게 박하다 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별안간 칭얼거리던 아이와 아이의 울음소리를 인지하자마자 매섭게 돌아가던 사람들의 고개. 이제 열 살은 되었을까 하는 작은 몸에 수십 개의 시선이 우수수 꽂혔다. 보호자가 줄곧 아이를 달래려 했음에도 칭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열차 안 사람들의 시선도 걷힐 줄 몰랐음은 당연지사다. 우리나라에서 제법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사실 이건 무려 10여 년 전의 일이다. 

출산율 바닥, 초고령화를 향해 달려가는 급행열차 같은 사회.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모자라다 그렇게 부르짖으면서도 아이들이 아이답게 구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모순. 어린아이의 존재 자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풍조. 공공예절을 미처 습득하지 못한 어린아이라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무작정 '민폐'라 낙인찍으며 특정 연령층을 통째로 배척하겠다는 발상. 이런 적대감의 집약처가 바로 노키즈존이다.

이쯤 되면 출산율이 수직으로 하락하는 이유도 딱 견적이 나온다. 아이가 뛰어다녀도, 칭얼거려도, 울어도, 심지어 웃어도 째려보며 쫓아내고 싶어하는, 0에 수렴하는 존재감을 뽐내야만 머물길 허락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나라. 이런 곳에서 누가 선뜻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겠는가. 아이가 눈에 띄지 않되 통계치의 일부로는 머물러 주길 바라는 집단에서 그 누가?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다른 손님들의 행동을 보고, 잘못된 행동을 제지당하면서 배워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도록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지역사회 전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이야기다. 비슷한 맥락에서 저자는 말한다. 기차에서 아기가 울면 '아기가 피곤한가 보구나' 하고, '식당에서 아이가 보채면 '집에 가고 싶은가 보구나'하고 말았다고……. 저자에 따르면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것을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일이다. 

어린이를 내쫓는 사회는 자연히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약자나 소수자를 몰아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그는 말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어린이에게 좋은 세상은 어른에게도 좋은 세상, 다시 말해 모든 구성원이 살기 좋은 세상이다. 이는 어린이와 연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어린이가 처한 환경을 끊임없이 검토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린이가 싫다'며 맹목적인 적의를 표출하기 전 한 번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어른 모두가 한때는 어린이였다고. 식당에서 칭얼거렸건, 컵이나 식기를 깨뜨렸건, 울음을 그치지 않았건, 뛰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혔건, 우리는 모두 어떻게든 누군가에게 폐를 끼쳤다고. 그리고, 그런 어린이의 실수를 양해받았기에 비로소 사회의 일부가 되었다고. 

안민하 기자 minha961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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