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하 기자
안민하 기자

새로 산 책을 읽다 마음에 들거나 인상 깊은 구절과 마주치면 아래쪽 귀퉁이를 자그맣게 접곤 한다. 너무 오래 전 읽어 내용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에세이(혹은 소설)에서 배운 방법인데, 텍스트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빼곡하게 밑줄이나 형광펜을 치는 것보다는 확실히 더 깔끔해 보인다. 

아침의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가는 삼십 분 남짓의 시간을 어떻게든 생산적으로 써 보려고 펼친, 알라딘의 아가사 크리스티 머그컵 굿즈가 탐나 끌리는 대로 주문했던 책. 분명 그 정도 의미였건만 과장을 좀 더해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예감했다. 읽을 페이지가 떨어질 때까지 매일 새롭게 이 책의 귀퉁이를 접게 되리라고.  

저자는 세상에 실존하는 인물의 입을 빌려 그들의 말을 전달한다. 어부, 할머니, 낚시꾼, 야채장수 언니,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911 테러로 형을 잃은 동생, 총기난사 사건의 생존자……. 직업도 나이도 삶의 궤적도 다른 이들이지만, 그 길에서 각자가 맞닥뜨렸던 고통의 형태도 제각기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단 한 가지의 연결고리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는 성취의 기쁨을 겪어 봤다.  

“살아 있는 자의 심장에서 나온 살아 있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살아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자신에게 중요한 단어가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더 나아가서는 타인을 삶으로 이끌 수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들은 공포와 좌절을 이겨내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안다. 자기 자신을 저버리지 않은 것, 쉽지 않은 삶을 적어도 더 괜찮게 만드는 것, 비슷한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된 것. 그것은 모두 좋은 이야기고 연대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다. 

잠시 책의 초반부로 돌아가 보자면, 몇 년 전 저자는 상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말하기’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프로그램의 출연자에게는 자기 자신을 말하되 그 단어 없이는 자기 자신을 말할 수 없거나 자기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단어가 금지된다. 예를 들어 라디오PD인 저자는 라디오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초반부의 내용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은 자기 자신을 말할 수 있는 단어를 떠올리는 데 실패한 탓이다. 책은 덮은 지는 오래여도 고민은 줄곧 이어진다. 왜일까? 아직 충분히 긴 시간을 살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삶 전체를 뒤흔들려 본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내 삶의 이야기에 라벨을 붙일 만한 애착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이나,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연대의 의미로 말해주고 싶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의미를 규정할 수 있는 삶에만 의미가 깃드는 것이 아니라고. 구전되는 이야기가 변하듯 사람이 품은 단어들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지닌 이야기에 제목을 붙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언제까지고 우리로 남으리라. 

아직은 남의 문장을 빌어 말할 수밖에 없으므로 책에서 가장 와 닿았던 구절,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 하나를 인용하며 마친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내 인생을 걸 가치가 있는 단어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 안에서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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