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왕이라 불리우는 가우스는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로그'를 발명한 네이피어는 철학과 신학을 연구한 인문학자였으며 뉴턴의 대표작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철학을 기반으로 한 수학 해설서였다. 

이우진 SK기술원 연구원
이우진 SK기술원 연구원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좌표평면을 발견하였으며 독일의 대표적 철학자인 라이프니츠는 현대적 의미의 계산기를 최초로 발명하였다. 수학과 과학분야의 필수 지식의 대부분은 수학자나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로부터 탄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창립하며 '인문학이 없었다면 자신도, 컴퓨터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는 마법이 존재한다'고 말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창업하고 스마트 폰을 발명하였으며, 라틴어로 고전 원전을 읽는 게 가장 즐거운 취미라고 밝힌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를 인터넷으로 연결하였다. 수학과 과학은 기본적으로 철학의 일부였고 인문학자들의 영역이었으며 수많은 발명과 기술은 인문학을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서 인문학과 과학이 분리되고 인문학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평균 330잔의 커피, 120병의 맥주, 90병의 소주를 마시고, 매일 3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2시간 이상 TV를 시청하고 있지만 책은 1년에 1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화를 좋아하지만 철학이나 사회문제 같은 인문학적 주제보다는 주식, 경제, 드라마, 타인에 대한 뒷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며 대화의 중요한 요소인 논쟁이나 토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고 인문학적 대화를 한다고 해서 고상한 인간이 되거나 철학적인 통찰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삶에 대한 성찰과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신의 인생이 사회시스템 안의 특정한 도구로 전락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방법을 찾기 위한 인문학적 활동에 관심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한 가치를 고민하기보다 돈벌이에 열중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고 점점 더 가난해진다고 느끼는 이유는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능력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이익'에 기반해 만들어낸 '검은 인문학'과 사회 지도층의 권력유지를 위해 만들어낸 우민화 교육의 결과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지배층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던 과거 봉건시대의 사교육 제도에서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공교육체계가 구축되었고 표면적으로는 실용주의 교육정책을 추구하였지만 그 이면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지지 않는 노예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우민화 교육이 진행되면서 교육은 국민의식 개혁이 아닌 일본의 식민통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교육관은 광복 이후 약 60년동안 경제개발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독재정치 체재하에서 오직 국가 성장을 위한 노동력 양성을 위해 산업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교육형태로 진화되었고 그 결과 개기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인문학적 교육은 사라지고 오직 경쟁과 생산성 향상만을 추구하는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으며 수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인문학적 기반으로 창조되었으나 자본 중심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만나게 되면서 우리는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도 항상 정신적 공허함과 실직적 가난에 둘러싸인 사회가 되어 버렸다.

생각하는 인문학
생각하는 인문학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인문학이 사회 한 구석으로 몰리게 되면서 “문송”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으며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평가절하 되었다. 종교 또한 인문학적 사고의 한 부류지만 인류의 기원이나 신의 존재성에 대한 의구심이 증가되었으며 오히려 종교 그 자체보다 특정 종교인에 대한 의존과 믿음이 목적이 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현대화가 지속되고 세대가 변화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인문학에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동안 등한시 했던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유행이 사회 전반에 번져가기 시작했고 공자나 노자의 동양철학이나 플라톤과 데카르트의 서양철학에 심취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하였지만 아쉽게도 인문학을 대하는 자세는 우민화된 교육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주장과 의견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사회적 고민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게 되었고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는 과정이 생략되고 오히려 '생각을 당하는' 생각의 노예로 전락하였다.   

 

'생각한다(Think)'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상가들의 철학과 논리를 이해해야 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절대 변하는 일 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진리의 세계를 인식하는 행위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 속에는 단순히 생각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고전을 읽고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생각 당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며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생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책 속에 죽어 있는 인문학에 의해 생각당하지 말고 생각의 주인이 되어 우리 삶을 가꿀 수 있는 지혜를 얻는 생각하는 인문학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 갈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행복해 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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