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라는 문구를 아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TV에서 또는 학교에서, 그리고 어른들께 이 문구를 많이 접해봤을 것이다. 항상 역사 교과서나 강의에서는 과거에 이러이러한 서적들이 있었고, 이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걸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기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역사를 제대로 알고 넘어가는 것일까? 나는 오늘 하나의 책과 함께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남기고자 한다.

황유담
황유담

내가 오늘 가져온 책은 <열하일기>라는 책이다.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어본 사람은 없을텐데, 이 책은 그만큼 과거 많은 역사들에 영향을 준 책이고, 또 과거의 많은 사람들을 바꾼 책이다. 열하는 중국어로 러허라고 하는 청나라의 지역 이름으로, 조선 정조 때에 박지원과 그 무리들이 청나라를 다녀온 내용을 쓴 연행일기이다. <열하일기>의 저자는 모두가 알다시피 연암 박지원으로, 그가 열하로 떠나는 여행에서 보고 느꼈던 모든 일들이 이 <열하일기>에 담겨져 있다.

어째서 ‘후삼경자(後三庚子)’라고 했는가. 여정과 날씨의 흐리고 맑음을 기록하면서 한 해를 가지고 달과 날짜를 말하려는 것이다.

-[열하일기] 中-

<열하일기>에서는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 뜻을 천천히 살펴보자면, 열하일기의 서문이 시작되었을 시기는 청나라 만주족을 물리치고 중원을 회복하자는 북벌론이 판을 치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명에 대한 의리를 지켜 청나라를 쫒아내자!’는 입장이 당시 사대부들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연도를 기재할 때 명나라의 연호인 ‘숭정 기원 후’를 고수했는데, 이는 무척이나 노골적으로 청나라를 적대하는 표현이었다. 박지원은 청나라에 대한 문명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이 연호를 좋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식으로 청나라 연호를 써 버리면 사대부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하나의 묘책을 마련했는데, 그게 바로 ‘후삼경자’라는 표현이다. 맨 앞의 ‘후’라는 글자는 ‘숭정 기원 후’라는 말을 미묘하게 줄여 사대부들이 보고 오해할 수 있게 표현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숭정’을 과감히 생략하여 청 문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처음 서문의 한 문장만으로도 모두 느껴질 거라 생각이 든다. 박지원은 이처럼 한 가지의 표현에도 다양한 것들을 담아내는 글솜씨를 지녔고, <열하일기>는 이에 더 많은 것들이 담겨질 수 있었다. 책에서는 열하일기의 매력을 여정, 유머, 우정, 유목과 같이 머리말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특히 유목의 부분에서는 박지원이 여행을 떠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더더욱 드러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장면이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冥心)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중략) 한 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 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건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열하일기> 中-

열하일기
열하일기

 

위의 내용은 여행 막바지, 고북구장성을 지나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는 강행군을 할 때였다. 하필이면 말을 잡는 사람이 발을 다쳐 뒷수레에 실려오고 물은 폭우로 범람하여 박지원 혼자 말을 탔다. 하룻밤에 그냥 아홉 번 강을 건너는 것도 힘든데, 말 잡는 사람도 없이 폭우로 범람한 강을 혼자 아홉 번이나 건너는 것은 지금 생각하기에도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박지원은 그 목숨의 위기를 겪으면서 ‘도를 알았노라’고 얘기한다. 그가 언급하는 ‘도’는 바로 ‘명심’, 어두운 마음이다. 그가 말하는 명심이란 ‘이목의 누’, 그러니까 분별망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말 그대로 우리가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눈과 귀를 내려놓는 그 순간을 ‘어둠’으로 표현한 것이다. 박지원은 그 어둠을 이용해 강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냈고, ‘물이 땅이 되고, 물이 옷이 되고, 물이 마음이’ 되는 도를 깨달은 것이다. 이와 같이 박지원은 다양한 깨우침을 통해 이질적인 것들 사이를 거닐면서 예기치 않은 것들을 깨우치는 ‘유목민’이었다. 책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박지원을 ‘노마드’, 즉 유목민이라고 얘기한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 여행과 삶은 크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 다시 서론으로 돌아가서 질문에 답을 할 때가 왔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 물론 사람마다 각자의 의견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실만을 일컫는 것이 아닌, 그때의 사상이나, 그 시대의 각 계층들의 생각들, 그리고 그것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모두 통틀어 기록으로 남은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흐름이 아닌,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과거의 한 장면이 되어야할 것이다. 나는 이 <열하일기>가 그런 마음의 시작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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