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이 가을, 책 한권 어떠세요?' 요즘 읽기 좋은 도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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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이 가을, 책 한권 어떠세요?' 요즘 읽기 좋은 도서 4
  • 안민하 기자
  • 승인 2021.09.24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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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경리 '가을에 온 여인'

'가을에 온 여인'은 대표작 '토지'로 한국 문학의 거장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박경리가 1960년대 출간한 책으로 모든 것을 가진 한 여자가 사랑과 복수로 파멸하는 내용을 그린다.  


작품 초반, 주인공 신성표의 관심을 끈 것은 ‘푸른 저택’이라는 공간이다. 소설 속, 영화 속이나 외국 잡지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세련된 저택은 등장인물들의 욕망이 충돌하고 갈등이 축적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주택은 당시의 현실에서는 쉬이 접하기 어려웠던 초현대식 공간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표상하는 왕궁이나 다름없다. 이 저택을 중심으로 주요 인물들이 얽히는 과정에서 애욕과 불륜이 교차하며 질투와 음모가 관계의 지옥을 엮어 나간다. 

푸른 저택은 풍족하나 가족애가 결여돼 있으며 구성원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는 단절된 지 오래다. 애인이었던 강 사장 동생과의 결혼에 실패한 오 부인은 현 박사와 공모해 강 사장 동생을 음독자살로 가장해 살해한 비밀을 지니고 있다. 이후 강 사장과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 오 부인은 미대를 중퇴하고 댄서로 일하다 들어온 석영희와 함께 살게 된다. 오 부인은 석영희가 남편과 불륜 관계인 사실을 알고 있을 뿐더러 강 사장 동생이 자신을 배신하고 결혼해 낳은 아들을 키우기까지 한다. 이런 비밀들은 푸른 저택을 상처를 덧나게 하는 증오의 미궁으로 만들고, 이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숨가쁘게 달려간다. 

이렇게 이 책은 상처받은 고독한 영혼과 그로 인한 여성들의 분열된 자아, 애정의 과도한 욕망이 결국 파국으로 이어지는 박경리 표 애정소설의 기본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지만 1960년대 당시 현대소설의 흐름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추리소설의 기법을 이용해 독특함을 더했다. 주요 인물들 사이의 삼각관계와 그에 얽힌 비밀과 음모를 풀어내며 저자의 그 어느 작품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상처 받은 영혼들의 관계 회복과 이를 위한 실천에는 사랑의 시간이 필요하며 사랑의 온기야말로 소외된 자들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박경리만의 철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애욕과 불륜이라는 소재로 더 빛난다. 

 

 

2. 앨리 스미스 '가을' 

'가을'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후의 시점을 다룬다. 영국의 여론을 반으로 가르고 아직까지도 논의가 지속되는 브렉시트의 이야기를 그렸다.

한때 예술가들과 어울리던 지식인 겸 작곡가였던 대니얼은 이제 동네에서 늙은 동성애자라 손가락질받으며 산다. 학교 숙제로 이웃 사람 인터뷰를 하러 그의 집을 찾았던 어린 엘리자베스는 그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이십 년 후 그의 영향으로 미술사를 전공, 대학 강사가 된다. 한편 백한 살이 넘은 대니얼은 요양원에서 주로 꿈을 꾸며 시간을 보낸다. 

저자는 삼십 대가 된 엘리자베스가 스쳐 지나가는 동네 풍경들과 관공서에서 대기하는 주민들의 모습들을 통해 브렉시트 직후 영국이 어떤 분위기인지 생생히 전달한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엘리자베스가 겪는 도시의 매몰찬 분위기와 차가운 사람들, 대니얼이 꿈을 통해 되새기는 추억들, 그리고 그와 쌓은 우정의 근원과 영향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추억들을 오가며 순환하는 이야기는 점점 늦가을을 향해 나아간다. 

저자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한 나라의 다양한 인물들이 가을이라는 계절적 키워드와 함께 천천히 순환해 나가는 모습을 함축적인 장면 묘사와 대화들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풀어낸다. 비록 이야기 바깥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엘리자베스와 대니얼의 나이를 뛰어넘은 순수한 우정은 타자를 포용하는 이웃의 가치를 되새겨 보게끔 한다.  

 

 

3. 가르시아 마르케스 '족장의 가을'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권력'을 메인 주제로 집필한 책. 라틴 아메리카 현대사 속 독재자들의 기행과 압제를 족장이라는 인물에 집약해 제시한다. 

카리브해의 자리한 한 가상의 공화국에는 그 누구보다 나이든 족장이 있다. 그는 전능하면서 고독하고 저속하면서 잔인하며 멍청할 정도로 무신경하지만 권력에 대해서만큼은 비상한 본능을 지녔다. 그는 모두를 불신하고 끊임없이 의심해 매일 밤 관저의 자물쇠와 빗장을 걸어 잠그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죽음의 상징과 같은 계절 가을을 맞이하며 족장이 되돌아보는 수백 년 간의 통치의 파편들은 때로는 독재자인 '나'의 목소리로, 때로는 독재 체제에 고통받았던 '우리'의 목소리로 재현된다. 저자는 기존의 문법과 작법을 벗어나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식민 시기에서 무정부와 독재, 다시 신식민주의로 이어지는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를 세심이 짚어낸다. 

'족장의 가을'은 1975년 라틴 아메리카에 여러 독재 정권이 존재하던 시기에 발매됐다. 당시 서구의 시선에서 볼 때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일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 속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TV드라마의 줄거리를 마음 내키는 대로 바꾸거나 갓난아이인 아들을 장군으로 임명하고 젖소와 수탉 같은 가축에 집착하는 족장의 기행들은 쿠바, 멕시코, 칠레, 베네수엘라 등에서 실재했던 독재자들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실제 사건들을 ‘족장’이라는 하나의 인물에 투영해 비현실적 세계 속에 실제 역사의 비극을 조명하고자 이 책을 썼다. 

 

 

4. 김제철 '그린펜션'

소설문학 신인상, 월간문학 신인상 희곡 부문, 삼성문예상, 오늘의 작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김제철 교수의 미스테리 중편소설.
 
첫 번째 이야기 '그린펜션'에는 한달 전 성천의 한 펜션으로부터 개업 십 주년 기념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육이오 때 성천전투에 참전했던 부대원들의 후손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법대 학장, 사업가, 연극연출가,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한 사람은 과연 누구이며 왜 그들을 초대했는가? 

두 번째 이야기 '끝나지 않은 계절'에는 자신이 담당한 환자의 죽음에 의구심을 가지는 현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환자는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던 터라 모두는 그의 죽음을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이지만 그의 복부에서 두어 군데 수상한 부종을 발견한 현수는 혼란감과 불안감을 느낀다. 결국 현수는 한 동료에게 이 사실을 은밀히 알리고 환자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과연 범인은 누구고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우리는 얼마나 주변의 진실을 묻고 살고 있는가. 한 집단이 내부적으로 갈등하면서 소멸의 길을 걷는 것은 당대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에 그 원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 현장을 그리는 것이 작가의 몫일 것이다." 

저자의 집필 목적은 역사의 악품을 각성하고 진실에 다가가는 것으로 그는 한 권에 실린 두 작품을 통해 역사를 생각하며 사는 삶을 조명한다.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회구성원들 간의 화해와 용서를 통해 공동체적 삶의 평화를 기대한다.

안민하 기자 minha961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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