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이식 수혜의 순서는 어떻게 정하는 것이 공정할까? 어떤 사람의 생명이 다른 사람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경우가 있을까?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보다 장기 이식을 먼저 받아야 할까? 장기 이식으로 연장될 것으로 예상되는 건강 수명의 길이가 수혜의 순서를 정하거나 생명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쳐야 할까? 기업 회장이 왕년의 스포츠스타나 학교청소부, 농촌 이주노동자보다 우선권을 받아야 할까? 치매 말기인 아흔 살의 노벨상 수상자와 성장에 문제가 있는 열다섯 살 학생이 모두 같은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있다면 사회는 누구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할까?"

 

비슷한 시기에 사망한 두 대학생(한강과 평택항 사건)에 대한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은 왜 그렇게 달랐을까? 코로나19가 극심했던 작년 봄, 이탈리아 의료진들은 병상 포화인 상태에서 어느 연령대의 치료 대상을 포기했을까.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어떻게 내려진 결정일까? 우리가 내는 보험료는 무엇을 기준으로 산정된 것일까? 왜 9.11 희생자 가족이 받은 보상금은 30배까지 차이가 났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생명 가격표’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값이 매겨진다. 불편한 사실이기에 입 밖에 내지 않지만 인간의 생명 역시 마찬가지다. 유엔인구기금에서 유엔 주요 사업의 수석 데이터모델러를 맡아 온 저명한 통계학자이자 보건경제학자인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은 저서 '생명 가격표'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 측정”이라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핵심 이슈를 파고든다.

그는 “우리 생명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가격표가 매겨진다. 그 가격이 늘 공정한 것은 아니며, 생명 가격표에 상당한 불공정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러한 가치 평가와 그 뒤에 숨겨진 가치 체계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실용적인 접근법으로 현실 세계에서 생명의 가치가 매겨지는 방법과 그 방법들이 야기하는 결과 및 한계점에 주목한다.

법원의 판결, 장기이식의 우선순위를 비롯한 모든 의료적 결정, 양육 비용, 기업의 오염 물질 관련 원칙, 보험과 보상금 등 우리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생명 가격표가 매겨지고 있지만, 그 산출법과 그 방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표면적으로만 드러나지 않을 뿐 개인, 가정, 기업, 정부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주체는 일상적으로 생명에 가격을 매기며 이것은 실제로 경제, 정책과 법률, 건강과 안전 등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생명 가격표는 불공정할 때가 많고 젠더, 인종, 민족, 문화적 편견이 크게 작용하며 노인보다는 젊은이, 빈자보다는 부자, 외국인보다는 내국인, 타인보다는 가족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낮은 가격표가 매겨진 사람들은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꽤 심각한 문제다.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의 '생명 가격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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