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사생활
병원의 사생활

'병원의 사생활'은 신경외과 레지던트 4년 차의 그림일기다. 전문의가 되기 까지의 과정들이 그림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하루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의사다. 그들의 하루가 궁금했다. 누구 나가 알고 있듯 의사들의 시간은 녹록치 않다.

신현종<br>(조선일보 사진부기자)
신현종
(조선일보 사진부기자)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위해 병원을 가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병원은 어딘 가가 아파 서야 찾게 되는 곳이다. 의사는 건강해 지고자 하는 환자들과 한 뜻이 되어 정성껏 그들을 돌보지만 누군 가는 걸어 들어왔던 그 문턱을 다시 못 넘기도 한다. 그래서 의사들의 하루는 누구보다 신중하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병원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가깝기만 하다.

환자들은 그에게 묻는다.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아주 젊은 시절 그는 삶과 생산이 같은 뜻이라고 여겼다. 생산하지 못하고 소비만 하는 삶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의사로서 공부를 계속하며 다른 걸 알게 됐다. 그는 그 시절의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가만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자취방에서 자기 비관이나 하고 있는 반 기체 상태의 치킨 소비자였다."

지금의 그는 말한다.

"가족이 찾아와서 이름을 불러도 아- 하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중환자들. 얼핏 그들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들도 나름 무언가 하고 있다. 그들을 매일같이 찾아오는 가족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준다. 지금 누워 가족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기억이 고통의 기억만이 아닐 것이다."라고.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생의 밧줄을 놓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발을 심하게 다쳐 더 이상은 축구를 할 수 없는 소년에게도 말해 준다.

"축구는 못 해.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건 할 수 있어.

......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놓치고, 꿈을 쫓다가 넘어져. 너는 그걸 조금 더 이르게 경험한 것 뿐이야. 먼저 경험한 자에게 지혜와 평온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저자는 일상 이외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전문적인 영역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려준다.

우리들은 의사들이 수술에 들어 가기 전 솔까지 동원하여 손톱 사이사이까지 깨끗이 씻은 후, 두 손을 접어 위로 올리고 수술방에 입장하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런 포즈를 취하는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됐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그 동작이 수술 장갑을 수월하게 착용하기 위해 서나 수술방 문에 손이 닿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줄 만 알았다. 의사들이 손을 씻은 후 위로 들고 다시 내리지 않는 이유는 깨끗이 씻은 손이 다시금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다. 더러운 팔꿈치의 물이 다시 손으로 흘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수술 필드에 들어가서 손을 쓰지 않더라도 다시금 아래로 떨어뜨려서도 안된다.

"항상 필드 주변에 두거나 가슴께에 손바닥을 붙여두던가 혹은 가볍게 팔장을 껴야 한다. 교수님들이 뭐라 해도 팔장을 끼며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수술방이다."

수술모에 대한 언급도 있다.

드라마에서 수술 장면을 보면 두 개의 다른 형태의 수술모가 있다.

그림1. 수술모의 두가지 형태
그림1. 수술모의 두가지 형태

"예리한 눈으로 수술방을 본 사람이라면 그곳에 두 종류의 수술모가 있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티베트 스타일의 모자와 김치공장 스타일의 모자. 기능상 별 차이는 없고 다음과 같이 각각의 장단점만 있다. 티베트 스타일의 캡은 머리를 전반적으로 누르고 직접 끈을 묶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얼굴에 자극이 생기지 않는 반면, 김치공장 스타일의 캡은 공간이 많아 머리가 눌리지 않는 대신 끈이 고무줄로 되어 있어 벗고 나면 이마에 자국이 가로로 그어진다,"

수술모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의사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전설처럼 가지고 있다는 병아리 시절의 흑역사도 가감없이 들려준다.

"수술방은 대개 온도를 낮게 유지한다. 온도가 낮아지면 환자의 혈액순환이 느려지고, 이는 출혈이나 감염 등 수술 중 발생 가능한 갖은 합병증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말 춥다! 한여름이라도 춥다! 수술복에 수술 가운을 칭칭 감아도 역시나 춥다!

사실 건강할 때야 수술방 추위가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날은 평소 잘 걸리지도 않는 감기에 된통 걸린 날이었다.

'그래 약도 먹었으니 어떻게든 벼터보자.!'

.......

그렇게 수술을 진행하던 중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 환자 부위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내 마스크 안, 입술 부위 위에서 발생한 것으로, 콧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수술중에는 땀이 흐르거나 안경이 삐뚫어지거나 머리가 간지러운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철저히 멸균되어 있는 서전의 손으로 수술 중 더러운 땀을 닦거나 안경을 고쳐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머리를 벅벅 긁으면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기에 교수님들은 서큘레이팅 간호사에게 부탁한다.

"ㅇㅇ 간호사, 미안한데 왼쪽 뺨 좀 긁어줄 수 있어요?"

......

그렇지만 이제 갓 수술방에 들어오기 시작한 보조의가 저렇게 부탁할 수는 없다. 참다 참다 너무 힘들면..... 그래도 한 번 더 참는다. 그러다가 수술이 잠시 중단되는 시점에 몰래 서큘레이팅 간호사 선생님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부탁한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머리가 가려운 것도 땀이 흐르는 것도 아니며, 안탑깝게도 인중을 지나 입까지 다다를 것만 같은 콧물을 흘리고 있다!

가족이라도 민망할 콧물 제거를 어떻게 부탁한단 말인가. 심지어 코를 풀려면 멸균마스크를 열어 젖혀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에겐 한창 진행되고 있는 수술을 잠시 멈추고 코를 풀 여유도, '수술중에 죄송한데 코 좀 풀고 오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용기도 없었다. 참고 참던 오줌을 지리는 순간 지옥문 앞에 선 듯한 고민은 사라지고 해방감이 찾아온다 했던가. 콧물이 입술가에 닿는 순간 내게도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 온전히 수술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마스크 안 사정이야 아무도 모르는 법. 아니 알든 모르든 이제와서 뭐가 중요하겠는가."

저자에게는 쉽게 말하기 힘든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글을 읽는 동안 그의 상황이 머리 속에 그대로 그려져 너무도 공감을 하며 읽었다.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의사의 어려움에 크게 공감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의사의 소소한 일상도 흥미로웠지만 작품처럼 등장하는 병원 스케치를 보는 즐거움도 컸다. 그가 맨 처음 그린 병원의 풍경은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의 맨발이었다.

그림2. 응급실 침상 풍경
그림2. 응급실 침상 풍경

예쁘고 깨끗한 발이 아니었기에 평소 같으면 남들에게 자신의 두 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게 무척이나 부끄러웠겠지만, 응급실에 실려 온 환들에게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정돈할 기력이란 없다.

"인턴 시절의 어느 날, 응급실 진료를 보던 내 시선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두통 환자의 벌거벗은 발에 고정되었다. 저 멀리 응급실의 구석진 곳. 이동식 침대에 누워 있는 두통 환자의 벌거벗은 발이 얇은 이불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 밖에서 양말이나 신발을 벗은 채로 있는 걸 꺼리는데 왜 저사람은 맨발인 채 덩그러니 누워 있을까. 그런 것조차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아픈 걸까. 순간 내가 그의 낯선 모습만을 주시할 뿐 그의 심경이 어떠한가를 살피지 못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응급실은 그처럼 환자가 통증과 수치심을 교환하는 곳이다) 그런 나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끔찍했고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얼른 그림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병원 그림일기의 시작이었다."

세상의 모든 의사가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겠지만, 병원에서 지나치게 사무적인 의료진를 만날 때면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환자는 언제나 약자인데, 게다가 당신에겐 매일 접하는 일상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정말 인생이 흔들릴 만큼의 큰일인데...' 하고 말이다. 그런데 저자의 이 발그림을 보고 나니 내가 그들의 시간과 마음을 너무 쉽게 판단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일과 안에는 이렇게 치열한 고민과 성찰도 분명 담겨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는 밀한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환자이고 보호자일 것이'라고.

무엇보다 오랜 동안 힘들고 고된 시간을 보낸 당신의 노력 덕분에 평화를 얻게 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 누구보다 인내하며 성실히 살아 온 세상의 모든 의사들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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