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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심 시인
이은심 시인

시인으로서 품위를 옷처럼 입고 살아가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 이은심 시인이 그 주인공이다.

이 시인은 애써 치장한 느낌 없이 세련된 멋을 풍길 줄 아는 젊은 감각의 소유자다.

그는 시를 통해 대중 속에서 같이 살아 숨 쉬고, 세상과 소통한다.

오직 시의 아취(雅趣)로 독자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이 시인을 만나본다.

이 시인은 자신을 ‘시 쓰는 일흔 살 여자’라고 소개했다. 일흔이 넘었음에도 그에게 있어 나이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다. 그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찬 모습으로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파했다. 이 시인은 “가끔 시인이 이래도 되나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걸 보면 ‘시가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해요. 꿈 속에서도 바람 소리를 듣도록 귀를 열어둔다거나 누군가 버린 것 속에서 울고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 울음에 동참하는 것, 그런 것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얻고 희열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래서 기꺼이 시의 나라 주민으로 살면서 선한 상태를 유지하고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시인은 어느 때부턴가 사람들과 다른 시선을 가진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글에 대한 뛰어난 소질이 있던 게 아니었지만, 시각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고 그걸 즐겼어요. 사실 시에 대해 공부한 것이 아니라 더딘 걸음으로 여기까지 오는 게 참 힘들었죠. 아마 초등학교 때 숙제로 썼던 시가 제 첫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언어를 파괴, 새로이 개발한다는 점에서 시의 매력이 있다고 했다. 한 구절이 한 편의 시가 될 만큼 많은 여백이 그의 문학열에 불을 지핀 셈이다. 이 시인은 “저처럼 끈기 없고 구조적인 사고의 체계에 서투른 사람도 또 게으른 사람도 시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행복해요. 만만치 않은 생의 장벽을 서정이나 서사구조로 넘나들 수 있다는 것도 좋죠.”라고 기뻐했다.

그는 가끔 형언할 수 없는 기운에 이끌릴 때 시와 만난다. 그 당시를 이 시인은 일종의 무중력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때 만난 구절들을 소중히 잡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나중에 보면 도저히 제게 나온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다가와요. 아주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충만하거나 몰입된 상태가 어느 정도 유지된 후에, 그러니까 가득 차야 넘치는 물컵처럼 그런 영혼의 충만함이 우주 어딘가를 떠도는 기운에 접속되는 거죠. 시는 절대 그냥 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시인은 최근 세 번째 시집 ’아프게 읽지 못했으니 문맹입니다‘를 출간했다. 시집을 펴낸 소회를 묻자 그는 ’효도‘란 단어를 꺼냈다. 특별히 잘한 게 없었다는 그가 시집을 통해 부모님을 기쁘게 해줬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첫 시집이 나왔을 때 아버지가 주변에 저를 시인이라 소개하며 자랑스러워했던 게 기억납니다. 이번 시집도 하늘나라에서 흡족해하실 것 같아요. 세속적인 성공이나 독자의 반응에 상관없이 무언가 한 가지를 열심히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죠. 내가 가진 것으로 충실한 삶을 꾸리고 주변을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아름답게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출간의 이유는 충분했다고 스스로 다독이고 있습니다.”라며 웃어 보였다.

이번 시집에는 삶에 지친 이들의 어깨 툭툭 치며 격려해주는 위로의 단어가 담겨있다. 그 한마디를 통해 독자들이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시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그는 “시 한 구절에서 잠시 멈추고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소중한 메시지가 될 수 있겠죠. 잠시 가슴을 적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시의 존재 이유는 충분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하는 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힘이에요. 깊은 겨울밤 외할머니가 조곤조곤 일러주듯 아무것도 아닌, 그렇지만 혹독한 삶의 현장에서 따뜻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고향 같은 평범한 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시집이 무사히 세상에 나왔지만, 그 과정이 마냥 순탄하진 않았다. 예기치 않은 코로나19가 발생해 주변인들과의 소통이 단절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인은 만남의 부재를 기회로 삼았다. 그는 “합법적으로 소외된 것이 제겐 좋은 쪽으로 작용된 거죠. 결과적으로 시와 좀 더 친해졌다고 할까요. 시를 쓰면서 조금이나마 덜 서먹하고 쏠쏠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시인을 그만두고 편하게 살까?’란 변덕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힘겨워했다. 그럼에도 이 시인은 스스로와 싸우며 감정의 기복을 다스리고 쓰러진 자신을 일으키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는 “글을 쓸 때 좌절을 겪곤 했죠. 살을 깎듯 자신을 내어주고 주어진 운명을 수용한다는 게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원히 쓰러져 있지않는 게 또 사람 아니겠어요? 신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준 평균치라는 게 있을테니 견디다 보면 좋은 때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버티는 거죠. 욕심부리지 말고 시가 시키는 대로 시 앞에서 정직하게, 묘사와 진술의 조합을 아름답게 이루면서, 아름다운 발견을 위해 투신하는 자세입니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하잖아요. 시와 사람이 분리되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점검하고 닦아 세우는 걸 일종의 수행처럼 반복하고 있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이 시인은 앞으로 어떤 시인이 되고 싶냐고 묻자 “돌풍을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정신적인 자유함을 누리면서 즐겁게 시를 쓰고 싶습니다”란 당당한 포부를 전했다.

◆ 이은심 시인은?

이 시인은 지난 199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시집 ‘오얏나무 아버지’, ‘바닥의 권력’, ‘아프게 읽지 못했으니 문맹입니다’가 있다.

그는 대전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서 창작기금을 수혜 받아 활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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