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쏟아진 금속활자 1600점 그 가치는?(사진=문화재청)
서울서 쏟아진 금속활자 1600점 그 가치는?(사진=문화재청)

지난달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결과 브리핑이 있었던 국립고궁박물관 강당. 유물 내역과 그 의미를 설명하러 나온 서지학·고고학·국문학·과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의 표정이 상기돼 있었다. 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해져 온, 조선 시대의 과학기술과 인쇄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까닭이다. 

15∼16세기에 제작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한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한글 활자 약 30점만 현존한다고 알려졌는데, 서지학계가 고대하던 조선 전기 활자가 무더기로 나온 것. 또 기록으로만 전하던 조선 전기 과학유산인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과 ‘자격루’와 같은 물시계 부속품 ‘주전’(籌箭)의 일부로 보이는 동제품도 발굴됐다. 세종 시대 과학유산 흔적이 대규모로 발굴되기는 처음이다.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인사동 79번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16세기 문화층(특정 시대 문화 양상을 알려주는 지층)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를 비롯해 물시계 부속품 주전, 일성정시의, 화포인 총통(銃筒) 8점, 동종(銅鐘)을 찾아냈다.

15∼16세기 조선 전기 금속활자가 이처럼 무더기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한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을해자’(1455년) 약 30점만 있었다. 이번 발굴에선 ‘을해자’보다 20년 이른 세종 때의 한자 활자 ‘갑인자’(1434년)로 보이는 실물 금속활자가 다량 확인됐다.

경북대 백두현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활자가 추후 연구를 통해 ‘갑인자’로 최종 확인되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금속활자가 된다”며 “독일 구텐베르크의 인쇄(1450년쯤)보다 이른 시기의 실물 금속활자를 최초로 확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조선 태종 때 만든 ‘계미자’(1403년)로 찍은 책은 있지만, 실물 활자 자체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는 조선 왕실에서 쓰이다가 일제강점기 이왕직을 거쳐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이관된 것들이지만, 이번 활자들은 동반 유물과 함께 ‘출토’된 최초의 활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이날 연구자들은 갑인자 추정 활자들에 대해서 “공인되면 세계 인쇄사를 바꿀 유례없는 성과”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신중한 연구를 거쳐야 한다”고 전제했다. 활자의 특성상 육안만으로 판단이 어렵고, 향후 활자를 찍어서 인쇄본과 대조하는 등 후속 연구가 면밀히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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