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 푹푹 찌는 날씨에도 대전문학관으로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코로나19로 문화행사 개최가 요원한 요즘 드디어 오랜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을 앞뒀기 때문이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시로 해가 뜨고 詩로 달이 지는 나라'가 2021 대전문학관 문화콘서트의 첫 문을 활짝 열었다.

대전문화재단이 기획한 문학콘서트는 시민들이 평소 만나길 꿈꾸는 작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장으로 이날 무대의 주인공은 올해 등단 60주년을 맞은 이근배 시인이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맡고있는 이 시인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해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 5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이근배 시인. 안민하 기자

충남 당진군 송산면 삼월리를 고향으로 둔 이 시인은 "오늘날의 이근배를 만든 환경"이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 대신 당진에서 조부의 손에 자란 그에게 작가의 꿈을 심어준 건 조부의 방에 있던 신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봤었는데 그걸 봤다. 예전 신문은 한문 투성이라 대충만 읽었지만 아마 그게 저를 글을 쓰게 만든 것 같다"고 회상했다. 

신문은 그의 진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가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고자 마음먹은 것도 신문에 난 문예 장학생 모집 공고 때문이었다. 이 시인의 조부는 사범대학교를 가라고 했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그는 "장학생이 안 되면 농사를 짓겠다"는 포부로 시험을 봐 반값 등록금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그렇게 문학 외길을 걸은 그는 1961년과 1964년 사이 시, 시조, 동시 세 가지 분야에서 신춘문학 5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유례없는 업적이지만 그는 "황소가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것"이라며 "60년 동안 썼어도 시 같은 걸 쓴 적이 없다"고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이유가 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시인의 피가 흐른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시로 해가 뜨고 시로 달이 지는 나라로 우리 민족에게는 문학적 DNA 가 있다.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시인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강조했다.

 

 

이근배 시인과 황진성 시인이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안민하 기자

 

이 시인은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를 묻자 '자화상'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시에 마침표가 찍혔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관객들은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이 시인은 관객들의 질문에 주저 없이 자신의 문학적 철학을 설파했다. 이 시인은 "좋은 시를 썼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글감을 찾아내면 된 거다. 내 안의 나를 잘 들여다보면 시상이 자연스레 찾아올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또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캐내서 그것을 시대와 사상, 철학과 접목시키면 그게 위대한 시가 될 수 있다"라며 자신을 찾아온 문인들을 위한 한 마디도 놓치지 않는 그였다.

이날 문학콘서트를 이은봉 관장은 국내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는 말로 정의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대한민국예술원 최고 영예의 자리에 이름을 올린 이 시인과 관객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문학 공연을 기획해 많은 관객들과 문학적 소통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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