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서점 인증제’라는 제도가 있다. 대전시가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도서시장 활성화로 침체된 지역서점을 돕고 지역 내 독서문화를 활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지역서점을 지원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서점에 대한 인식을 책을 파는 공간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시에서는 지난달 관내 서점 93곳을 선정, 인증을 완료했다.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도인 만큼 앞으로의 길을 닦는 일이 중요하다. 뉴스앤북이 지역서점 인증을 받은 93곳을 찾아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 온 지역서점들의 어깨가 특히 무거운 요즘이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책방들이 악화되는 경영난으로 하나둘씩 거리를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서점 하나를 찾는 것도 어려운 오늘날 21년 동안 지역 주민들의 곁을 지킨 '골드북서점' 선사점의 이동혁 대표, 아내 이희순 씨와 책방생활 이야기를 나눠 봤다.

골드북서점 선사점은 지난 2000년 문을 열었다. 한 세기의 시작과 함께 출발한 셈이다. 건설회사를 다니던 이 대표가 서점을 선택한 이유는 '새 출발'을 위해서였다. 그는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한곳에 정착하고 싶었다"며 "건설업과 완전히 다른 일을 찾다가 서점을 고르게 됐다"고 회상했다. 

처음 문을 열 때 부부는 책을 좀더 수월하게 공급받기 위해 서울의 '골드북'이라는 회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본사가 문을 닫으며 흐지부지됐다. 상호명을 변경하지 않기로 해 골드북서점 선사점으로 남았다.

 

골드북서점 선사점의 이동혁 대표. 안민하 기자

 

골드북서점 선사점은 영업 시간이 유독 길다. 부부는 서점 문을 오전 10시에 열어 오후 11시에 닫는다. 무려 한나절 동안이나 가게 불이 켜져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학업 때문에 서점에 들릴 시간이 없는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서점 문이 닫혀 있으면 학원이 늦게 끝난 학생들이 책을 사기 어렵지 않냐”며 “한 명이라도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다”고 신념을 드러냈다. 

찾아오는 발걸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서점 책장을 풍성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부부는 ‘없는 책이 없는 서점’을 만들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한다. 신간이 들어오면 단 몇 권이라도 들여놓고 손님들이 부탁하는 책이 있으면 최대한 빨리 품에 안겨 주려 늘 고군분투한다. 힘은 들지만 보람찬 일이다. 이 씨는 "큰 데 가도 없는 문제집이 여기에는 있다고 먼 데서도 온다. 여기 오면 다 있다고 신기해한다"고 자부했다.

걱정이 있다면 요즘 서점을 찾는 발길이 확 줄어들었단 것이다. 근처에 들어선 체인형 대형서점과 코로나19가 이중고를 떠안겼다. 하루 200~300명 씩 찾아오던 손님은 반절로 줄었다. 이 대표는 "온라인서점이 활성화될 때까지만 해도 와서 직접 책을 고르는 재미가 있으니 그래도 손님이 많이 왔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거의 안 온다"며 "지나가다 들어와서 구경하고 쉬기도 하시라고 의자도 만들어뒀지만 필요 없게 됐다"고 씁쓸해했다. 이 씨도 "와서 구경이라도 하고 갔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여기 서점이 있다는 것도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시가 지역서점인증제를 시행하며 사정이 나아지길 기대했지만 인증 완료 후 연락이 전혀 없어 부부는 답답하기만 하다. 이 대표는 "아무나 인증해주는 게 아니라더니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 씨도 "지역서점 인증을 받으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요새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골드북서점 선사점은 약 2만 권의 책을 구비하고 있다. 안민하 기자

아무리 운영이 어려워도 그들은 서점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서점은 그들에게 단순한 가게 이상이다.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깃든 추억이 너무 많다. 이 대표는 "우리 서점이 도움이 많이 됐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며 "어떤 학생은 한의사가 돼서 그 한의원에 몇 번 찾아갔었다. 어떤 분은 아들들이 여기서 책을 사서 보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고 계속 온다"고 의지를 다졌다.  

단골들의 응원과 동네 유일한 서점이라는 자부심으로 이 시기를 버틸 수 있다고 부부는 믿는다. 이 씨는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가끔 와서 '없어지면 안 된다, 끝까지 계셔야 한다'고 말한다"며 "매출은 떨어지고 있지만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보람있다. 문을 닫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표도 "힘들어도 계속할 것"이라고 확고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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