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서점 인증제’라는 제도가 있다. 대전시가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도서시장 활성화로 침체된 지역서점을 돕고 지역 내 독서문화를 활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지역서점을 지원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서점에 대한 인식을 책을 파는 공간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시에서는 지난달 관내 서점 93곳을 선정, 인증을 완료했다.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도인 만큼 앞으로의 길을 닦는 일이 중요하다. 뉴스앤북이 지역서점 인증을 받은 93곳을 찾아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예전에야 근처에서 책방 하나쯤 찾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지만 서점이 매년 꾸준히 줄어드는 지금은 그 '하나쯤'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동네에 언제든 마음 편히 들릴 수 있는 책방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대전 서구 관저동에서 아내, 아들과 함께 ‘동네북서점’을 운영하는 변상윤 대표와 책방생활 이야기를 나눠 봤다. 

변 대표와 가족들이 서점을 찾은 학부모들에게 아이가 몇 살인지, 진도는 어떻게 되는지 물어 가며 책을 추천하는 모습에서 세심함이 묻어난다. 회원가입을 하면 온통대전 캐시백과는 별도로 10% 할인을 적용해 주고 다이어리나 공책 같은 자그마한 선물을 증정하기도 한다. ‘동네 책’이라는 뜻의 이름에 걸맞게 정겨운 느낌 가득한 공간이다.

10년 가량의 세월을 제철업, 건설업 등 공장 일에 몸담았던 그는 산재로 업무를 그만두고 서점을 열었다. 책을 유통하는 총판매업 관련 일을 했던 경험 덕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는 "힘든 일을 못 할 것 같고 큰애가 군대에 가 있으니까 2~3년 안에 자리를 잡으면 되겠구나 했다"며 "가족들이 서점을 많이 하기 때문에 10년 동안에도 책하고 멀어져 있다는 생각은 안 했다"고 말했다. 

변 대표가 서점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객과의 신뢰다. 소매업은 문을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만 정확히 지켜도 반절은 성공한다고 그는 말한다. 영업시간을 지키는 것이 곧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 대표는 "'저 집은 밤 11시까지는 항상 불이 켜져 있었어', '저 집은 아침 7시면 틀림없이 문이 열려 있어' 이런 신뢰를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 비결이라면 그것밖에 없다"고 자신했다. 

그가 그리 생각하게 된 데는 계기가 있다. 집안 사정 상 서점 문을 여는 시간이 30분 정도 늦었던 날 고객이 전화로 화를 낸 일이다. 고객에게 사정을 설명하긴 했지만 영업시간을 안 지키면 어렵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기본을 지키는 게 가장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곧은 마음가짐이 동네 주민들에게도 통한 모양이다. 온라인서점이 활성화되는 요즘에도 동네북서점에는 꾸준히 책을 사려는 주민들이 찾아온다. 주문·결제부터 받아 놓고 재고가 없을 시 일방적으로 주문을 취소하는 일부 온라인서점의 악습 탓이다. 그는 "3년 동안 엄마들이 '아, 그 책은 그냥 인터넷으로 주문했어요' 했는데 요즘에는 '사장님, 인터넷이 속썩여서 못 사겠어요. 사장님이 구해주세요'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들린다”고 말했다. 

이 인기 비결은 동네북서점이 온라인서점에 밀리지 않는 환경을 갖춘 덕이다. 우선 고객이 주문한 책은 끝까지 책임을 지는 책임감이 믿음을 준다. 가격 면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10% 자체 할인에 온통대전 가맹으로 또 10% 캐시백 혜택을 제공하니 동네북서점을 이용하면 도합 20%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변 대표는 "20% 할인이라는 좋은 환경이 마련돼 있어 온라인서점과 가격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책을 들여오는) 시스템과 신뢰만 구축하면 동네서점이 망할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모든 서점이 동네북서점 같은 운영이 가능한 건 아니다. 책만 팔아서는 운영이 어려워 서점에 문구, 불량식품, 심지어 복권까지 들여놓는 곳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그는 지역서점인증제의 인증 기준, 특히 '전시·판매 면적이 매장 전체의 30%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아쉽기만 하다. 

그는 "도태된 서점들에게 일정 부분 자립할 수 있는 지원을 해 주는 게 선행됐어야 한다"며 "본인이 의지가 있다면 시설 투자도 하고 환경을 만들겠는데 시에서 그냥 기계적으로 30% 이상으로 정해 버렸다"고 답답해했다. 

그래도 자립에 대한 의지를 가지는 것 자체는 서점주가 해결할 몫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지금의 서점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사회적기업을 세우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그 때문이다. 소외된 서점인들만 직원으로 받을 예정이라는 변 대표는 기업 운영으로 그들에게 의욕을 불어넣겠다는 각오다. 

그는 “학교장터 납품에 계약 하나를 넣는 것도 힘들어하시는 분들인데 다른 대안도 없다”며 “나도 수익이 생기는 거고 궁극적으로는 그분들이 독립하길 원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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