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찬은(필명)씨의 소설 '오늘의 불쾌지수'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작가 하찬은(필명)
작가 하찬은(필명)

비서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안 군수와 서장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후보등록 마감 직전에 등록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개가 있습니다.”

안 군수와 서장은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로 눈빛만 교환했다. 비서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상황을 설명했다.

“후보 등록자가 더 있다고 해서 급하게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갔는데요. 아 글쎄, 후보 등록을 한 건 맞는데 그게 사람이 아니라 개라는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안 군수는 비서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안 군수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사태가 파악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안 군수는 이른 아침, 비서가 가져온 지방 일간지를 모두 뒤졌다. 몇 개의 지방 일간지를 뒤적거리다 C일보의 1면에서 시선이 멈췄다. C일보 1면에는 개와 주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 크게 실렸고, 그 위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개가 후보 등록을’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2, 3면에는 해설 기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개나소나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배경을 설명하는 박스기사와 법적 문제는 없는지, 향후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예상하는 기사가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한참을 신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안 군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신문을 내려놓고 비서에게 나기영 기자와 전화 연결을 하라고 지시했다. 수화기에서 마른 침을 삼키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나기영 기자님? 오랜만입니다. 저 안종문입니다.”

나 기자는 안 군수가 왜 전화를 했는지 알면서도 무슨 일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몇 번씩 선거를 치르는데도 여전히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정치담당 기자님들과 술도 한 잔씩 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동안 많이 소원했습니다. 죄송…….”

나 기자는 안 군수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말을 가로챘다.

“오늘 기사 때문에 전화하셨구나? 세상에 참 희한한 일도 다 있죠? 개가 군수 후보라니 나 참. 저도 기사를 쓰면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안 군수는 입술을 깨물며 태연한 척 말했다.

“나 기자님. 이게 말이 되는 기사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이 안 되죠. 개가 선거에 나온다는 게……, 근데 기사는 끝까지 읽어보셨어요? 그거 예전에, 그러니까 군수님이 국회의원 시절에 대표발의 한 법안이던데요.”

안 군수는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멍하니 옆에 서 있던 비서를 바라봤다.

“냉장고에 술 있나?”

안 군수는 비서가 가져온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 안 군수는 두 병을 마시는 동안 초점 없이 허공만 응시했다. 문득 ‘군민을 가족처럼’이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안 군수는 플래카드를 바라보며 비서에게 말했다.

“그 개새끼 주인, 전화번호 좀 알아봐.”

안 군수는 ‘군민을 가족처럼’이 붙어 있는 벽에 소주병을 던졌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소주병이 산산조각 나며 바닥에 흩어졌다.

비서가 휴대전화를 바꿔주고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네. 박병환입니다.”

안 군수는 서서히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군수 후보 등록했다는 개 주인이십니까?”

병환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만.”

안 군수는 치솟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나 안종문이다. 이 개자식아.”

병환은 안 군수의 갑작스러운 고함 소리에 잠시 겁을 먹었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군수님, 무슨 일로…….”

안 군수는 병환이 말할 틈도 없이 쏘아 붙였다.

“그래, 군수다. 개새끼야. 너 죽고 싶어? 선거가 장난이야?”

안 군수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자 병환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저한테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네요. 후보등록은 제가 아니라 우리 강아지가 했습니다만…….”

안 군수는 병환의 빈정거림에 뒷목을 잡으며 가벼운 신음을 토해냈다.

“그러셔? 그럼 그 개새끼 후보 좀 바꿔줘봐.”

병환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병환이 강아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안 군수는 ‘깜순아, 깜순아’하는 병환의 소리를 듣자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안 군수는 괴성을 질렀고, 병환은 안 군수가 이성을 잃고 괴성을 지르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안 군수는 휴대전화를 집어던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한참동안 핏대를 세우며 괴성을 지르던 안 군수는 비서에게 무슨 말인가 하려다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다음 날 뉴스에는 안 군수의 입원 소식이 전해졌다.

‘안종문 군수, 후보등록 후 갑자기 쓰러져……아직 의식 찾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앵커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불쾌지수가 매우 높은 날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나는데요. 이런 날에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전해드리게 됐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말장난으로 시작된 ‘개나소나법’을 기억하시는지요? 결국 개가 후보 등록을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보도에 정치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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