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 중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을 때 일화다. 중국인 학생들과 밥을 먹고 거리를 걷고 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가 우리를 향해 ‘어이, 짱깨’라는 소리를 질렀다. 학생들을 관리해야 하는 나는 그 무리들을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을 다독이며 걸어가는데 다시한번 ‘어이 짱깨! 자장면 먹었냐?’ 라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시비를 거는 무리들에게 ‘무슨 예의없는 행동이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 순간 들려오는 말이 ‘어~한국사람이야~ 짱깨랑 같이 다니니까 짱깬 줄 알았네’라며 ‘중국사람에게 짱깨라고 하는 게 틀린거야?’, ‘기분나빴다면 미안해요’라는 한마디 말만 던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병신, 짱깨, 급식충, 지잡대, 맘충… 등 우리가 흔히 듣고 쓰는 말이다. 내가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무시하려고 하기보다는 농담처럼 편하게 쓴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상대는 그냥 들을까? 때로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차별을 행하는 것이 악랄한 의도가 아니지만 타인에게는 차별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이 제목은 곧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모순된 제목속에서 우리는 쉽게 농담처럼 던지는 말 속의 차별이란 단어가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지 알려준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차별은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가?

문제는 ‘나는 배려심이 많은데, 내 생각은 대중적이고 가치관도 뚜렷한데, 다수의 생각은 이러한데’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장이 다르다면 나는 상대방을 ‘원래 그렇다. 말이 안 통한다’라고 판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객관화된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차별주의자가 되버리는 것이다. 즉 다수인 입장에서 우리는 소수자를 선량함을 가장한 차별을 두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소수자일 때에는 차별을 당했다 생각하지만 다수자의 입장일 때에는 차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우리 모두를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만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소수자들 즉, 여성, 외국인, 장애인, 성소수자들의 입장에 대해 공감하고 다양한 불평등 구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회사에서 근무하다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 중 2%라고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 다들 그 사람이 모자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처음에 ‘나도 정말 모자라는 구나’ 하고 그를 보면서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상인분하고 프로그램 상의를 하러 갔는데 때마침 그 가게에 그가 들어왔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2% 또 왔네~’ 하면서 ‘2% 부족하니 우리가 도와줘야지’라고 말을 한다. 그가 나가자 사장님이 ‘2%가 뭐야~ 저 사람도 다 생각이 있는데...’ 하며 호통을 치시며 ‘저 이만큼 순수한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차별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차별을 없애기 위한 사회적 제도도 필요하지만 스스로가 차별을 인식하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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