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찬은(필명)씨의 소설 '오늘의 불쾌지수'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작가 하찬은(필명)
작가 하찬은(필명)

여야 의원들의 싸움 장면은 고스란히 방송과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이후 양당의 지루한 신경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장외 투쟁과 전원사퇴를 부르짖으며 양 당의 감정싸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갈수록 치졸해지는 싸움은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논의 중이던 수많은 사안은 사라지고, 개나 소가 정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화두가 됐다. 어처구니없는 이들의 싸움은 일명 ‘개나소나법’ 상정을 두고 치열하게 격돌하는 양상이 되었다. 누가 법안을 대표발의하고 누가 동의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도 그들의 싸움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민들의 무관심과 계속되는 국회의원들의 싸움 속에 ‘개나소나 논쟁’은 국회의사당을 떠돌고 있었다. 의사당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지 오래였고, 국회의원들은 매일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싸워댔다. 유치원생의 국회 견학도 전면 통제됐다.

국회의장은 거친 욕설이 난무하는 혼돈 속에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긴박한 표정으로 의장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다.

“의장님! 큰일 났습니다.”
침까지 흘리며 졸고 있던 의장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사내를 쳐다봤다.
“무슨 일인데? 여기보다 더 큰일이 있어?”

사내는 더 작게 소곤댔다.

“우창석 기자가 의장님과 시호씨 관계를 눈치 챈 것 같습니다.”

시호는 아이돌 그룹 멤버이자 최근 영화를 찍으며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가수 겸 영화배우였다.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던 의장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떨어졌다.

“어디까지 눈치 챘다는 건데?”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시호 씨랑 필리핀에 다녀온 것까지…….”

 “아, 씨발, 좆됐네. 좆됐어.”

의장은 한참을 중얼거리다 사내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이 새끼야. 그럼 우 기자를 불러다가 술을 먹이던, 돈을 주던 방법을 찾아야지. 여기 와서 이러면 나는 어쩌라는 거야?”

사내는 의장이 멱살을 흔들며 죽일 듯이 몰아세우자 조심스럽게 묘안을 제시했다.

“의장님!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방법이 있다는 말에 의장은 멱살 잡은 손을 풀며, 사내에게 귀를 가져다댔다.

“이건 제 생각인데요. 지금 의장님 사건을 덮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장님 열애설보다 더 큰 뉴스를 터트리는 겁니다.”

의장은 사내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누가 그걸 모르냐? 나와 시호 관계보다 더 큰 뉴스가 뭐가 있어. 답답하네 진짜.”

절망하는 의장의 모습을 보며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의장석 앞까지 몰려와 드잡이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사내의 의미심장한 눈짓에 잠시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던 의장도 이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개나소나?”

의장은 혼란한 틈을 타 의사봉을 번쩍 들어올렸다.

‘탕! 탕! 탕!’

병환의 이야기를 듣고 나 기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기자는 승용차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라꼴이 참.”

나 기자는 불을 붙이려다 말고 병환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 근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좆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왜 다들 몰랐지?”

병환은 나 기자의 입에 있는 담배를 빼앗아 불을 붙이고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다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기억을 지워버린 거겠지. 집단 기억상실증 같은? 그리고 누가 설마 개나 소가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냐.”

병환과 나 기자는 한동안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나 기자는 세 번째 담배를 꺼내 다 담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진짜, 미친척하고 이번 지방선거에 강아지를 출마시켜볼까?”

 “에이…….”

 “왜? 너 안 군수 떨어뜨리고 싶다며? 불법도 아니잖아? 막말로 이런 개똥같은 법을 만든 놈들인데 똑같이 당해봐야지 안 그래?”

 “정말 괜찮을까?”

병환과 나 기자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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