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찬은(필명)씨의 소설 '오늘의 불쾌지수'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작가 하찬은(필명)
작가 하찬은(필명)

나 기자가 병환의 집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병환에게 몇 번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4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병환이 전화를 받았다. 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무슨 전화를 이렇게 많이 했어?”

 “시끄럽고, 집 앞이니까 당장 나와.”

병환은 전화를 끊고 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나 기자는 병환을 보자마자 승용차 조수석에 강제로 태우듯 밀어 넣고 자신도 재빠르게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병환을 다그쳤다.

“말해봐.”

 “뭘?”

 “뭐긴 뭐야 이 자식아. 어제 네가 했던 말이지.”

병환은 길게 하품을 하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 기자를 바라봤다. 나 기자는 최신판 법전을 병환에게 들이대며 말했다.

“진짜 개나 소도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더라니까. 이게 말이 돼?”

병환은 뜨악한 표정의 나 기자를 보고 지난 밤 자신이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여당인 ‘제일제당’과 야당들의 정쟁이 끊이지 않던 때였다. 몇 달째 법안 발의도 없었고, 예산 처리는 해를 넘겼다.

야당인 ‘통합혁신당’과 ‘개혁정의실천당’은 국민보다 여당의 독주를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두 야당은 결국 양당 합당의 길을 택했고, 사상 초유의 당명을 가진 ‘통합혁신개혁정의실천당’이 탄생했다. ‘통개당!’ 국민들은 그렇게 불렀다.

거대 당명으로 거듭난 통개당은 통합은 했으니, 혁신도 해야 했고, 개혁도 해야 했고, 정의도 실천해야했다. 당 대표를 초선의원으로 결정한 것도 혁신과 개혁을 실천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모든 일은 당 대표 선출로부터 시작됐다. 통개당 당 대표는 제일제당 당 대표의 말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딴죽을 걸었다. ‘잘한다, 잘한다’하는 동료 의원들의 칭찬이 통개당 당 대표의 만행을 부추겼다.

그날은 여야 당 대표가 공동으로 선거구 재편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 자리였다. 오랜 시간 지지부진했던 사안이라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연신 터지는 카메라 후레쉬를 받으며 여당 대표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그 동안 많은 국민들이 답답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우리 제일제당과 통합혁신개혁정의실천당은 긴긴 논의 끝에 드디어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여당 대표는 환한 웃음으로 야당 대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러나 야당 대표는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거짓말입니다. 전혀 합의된 것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 의견을 교환했지만 결국 원점에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일단락 했다는 점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환한 표정으로 야당 대표의 말을 듣고 있던 여당 대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마이크를 빼앗았다.

“기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야당 대표께서 뭔가 혼동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이크는 꺼졌지만, 어떤 기자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엇갈린 두 당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가 헤드라인인데 기자들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기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야 당 대표는 격해진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기자들은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숨을 죽이고 그들의 싸움에 모든 신경세포를 청각에 집중했다.

여당 대표의 삿대질이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국회의원이면 다 같은 국회의원 인줄 알아? 여야 합의가 장난이야? 당 대표라고 대우해줬더니, 이거 막가자는 거야 뭐야?”
야당 대표도 물러서지 않았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자고 한 게, 그게 합의야? 선배면 선배다워야지, 어따 대고 삿대질이야?”

각 당 의원들이 말리면 말릴수록 두 당 대표의 언쟁은 더 거세졌다.

“어디 근본도 없는 자식이 국회에 들어와서 물을 흐려, 개나 소나 다 뱃지만 달면 국회의원인줄 알지? 너 같은 놈들 때문에 국개의원 소리를 듣는 거야, 이 자식아.”
여당 대표의 개나 소 발언에 야당 대표는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었다.

“이 양반이 말이면 단 줄 아나? 아니, 말 나온 김에 개나 소나 데려다가 누가 정치를 더 잘하나 한 번 봅시다.”

둘의 싸움은 걷잡을 수 없었다. 여당 대표는 급기야 욕설과 함께 손에 잡힌 명패를 집어던졌다. 야당 대표는 날아오는 명패를 피했고, 졸고 있던 의원 하나가 명패를 맞고 쓰러졌다. 싸움은 이제 벤치 클리어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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