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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작가
김수남 작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젊은 감각을 앞세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 김수남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소설가라는 이름 하나로 우직하게 한 길만 걷고 있다.

서울을 초개처럼 버리기로 결정한 김 작가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전에서 자신의 문학관을 넓혀가고 있다.

청·장년 때보다도 더 뜨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단어을 채워나가고 있는 김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 그늘에서 벗어난 노장의 귀환

김 작가는 30여 년 만에 소설집 ‘그자들은 쇤네를 똥개라 불렀습죠’로 돌아왔다. 소설집의 표제작은 조선 영조 때를 배경으로 한 중편소설이다.

책은 먹고살기 어려워 부잣집 몸종으로 들어간 인물 묘향을 중심으로 권력 속에서 자비 없이 짓밟히는 을의 상황을 풍자적 요소를 더해 흥미롭게 풀어간다.

그는 “작가적 세속적 욕망 따위에는 큰 욕심이 없어요. 그냥 쓴 거죠. 신분 따위로 갈등하는 삶의 원리는 본능적으로 같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불평등하단 것을 표현했어요. 제가 늙은 작가니까 유언장 같은 기분이 들었죠.”라고 말했다.

소설집의 시작은 표제작이 아닌 ‘팥죽’으로 시작한다. 팥죽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다. 어머니의 생을 통해 한국 근대사를 조망한다는 의미도 더해진다.

이에 김 작가는 “제가 소설을 쉽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조선 시대 이야기를 쓰면서 한자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거 때문에 독자들이 초장부터 흥미를 못 느끼면 골치가 아프겠죠. 그래서 팥죽을 맨 앞에 뒀습니다. 팥죽은 독자의 접근을 쉽게 해 나머지 소설도 읽어줬으면 하는 일종의 서비스 같은 것이죠.”라고 설명했다.

◆ 다사다난했던 작가로서의 삶

김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고 글쓰기가 삶의 존재 이유임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가 김 작가에게 마실 나온 것이다. 특히 그는 대학 시절 단편소설 '조부사망급래'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부터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작품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던 그. 수많은 제약을 이겨내지 못하고 글쓰기 가치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지역 일간지에 장편소설을 연재하던 중 작품의 배경과 소재가 시대상과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갑작스러운 연재 중단 통보를 받은 것. 그때부터 김 작가는 약 30년간 펜을 놓았다.

김 작가는 “문인 간첩 사건이란 게 있었는데, 그 당시 일부 문인들이 옥고를 치렀습니다. 저도 한양이란 잡지에서 청탁을 받아 ‘1인칭 시대’란 단편소설을 썼었어요. 박정희 시대의 정권교체를 소년들의 대장 놀이에 빗대 표현했는데 그 의미를 파고들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탄압을 피할 수 있었죠. 또 제가 만든 세계인 코프리카의 독재자 쿠세멍카의 이야기, ‘장군과 멍군’등 상징적인 소설을 통해 사회의 면면을 비판했습니다.”라며 그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2010년대에 들어서며 ‘호서문학’을 통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호랑이가 가죽을 남겨야 한다’는 것처럼 자신의 소설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나이에요. 죽음은 다 똑같죠. 그래서 빨리 제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쓰고 싶은 주제가 제 창작욕에 집적거리면 계속해서 글을 쓰겠죠.”

◆ 친근한 표현으로 독자에게 다가서다

김 작가의 소설에는 사실적인 표현이 가득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직설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초창기 작품에는 추상적인 관념이 주를 이뤘다.

이에 대해 그는 “처음에 사실적인 방향으로 바꿀 생각을 못 했죠. 그러다가 ‘달바라기’란 작품을 통해 사실성에 집중했고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달바라기는 제가 만든 단어에요. 한국전쟁 직후 대전역 판자촌에서 살아가며 햇빛을 보지 못하고 은은한 달빛에 의지해야 했던 젊은 군인들의 이야기죠. 제가 사실적 묘사로 들어가기 시작한 과작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저서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제 소설집이 눈앞에 있을 때 어떻게 했어야 독자가 선택할지를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진부하고 식상한 모습이면 독자들을 만날 수 없죠. 그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소설을 읽으라고 하면 안 됩니다. 첫 단추를 잘 꿰야하는 것처럼 소설도 처음에 흥미를 끌고나서 술술 풀어가야 해요.”

앞으로 집필 계획이나 구상 중인 소설이 있냐는 질문에 김 작가는 자신이 쓴 시를 한 편 건넨다. ‘황태사(黃太辭)’란 시다. 황태의 입을 빌려 자신의 자존감을 말한 것이라고 웃어 보인다.

“앞으로의 뚜렷한 작품 계획은 없습니다. 시집 한 권을 내고 싶은데 장담은 하지 못하겠어요. 남은 인생을 살다보면 시가 언젠간 저에게 다가와주겠죠.”

◆ 김수남 작가는?

김수남은 대전중·고 충남대를 나온 대전의 작가다. 스무살의 나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현대문학, 한국문학, 세대, 월간문학, 한양, 광장, 정통문학 등 각종 문학지에 작품을 냈다. 중편소설 ‘달바라기’를 창작과 비평에 발표, ‘취국醉國’을 대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통찰과 유머는 그의 작가적 브랜드다. 가톨릭 본명은 아우구스티노, 자호(自號)는 ‘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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