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의 영광은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에게 돌아갔다. (물론 우리에겐 윤여정 배우가 최고로 자랑스럽지만 말이다) 작년의 <기생충> 신드롬과 더불어, 그동안 보수적이라고 비판 받았던 아카데미가 영화라는 예술에서의 미학과 사회적 의미,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다는 확실한 변화의 기조를 보여주었다. 참고로 <기생충>은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노매드랜드>는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다. 모두 각 영화제의 그랑프리이다.

목진태 블루프린트북 대표
목진태 블루프린트북 대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네바다의 엠파이어 시의 석고보드 공장이 폐업하자 주민들을 먹여 살리던 산업적 기반이 무너진 도시는 빠르게 침체되어 우편번호까지 말소되는 상황에 이른다. 엠파이어 출신인 주인공 ‘펀’은 남편마저 병으로 잃자 RV(Receational Vehicle, 작은 캠핑카)를 타고 떠돌며 자신과 비슷한 노매드들을 만난다. 이들은 매년 정해진 기간마다 단기 근로자를 모집하는 공장의 계절노동을 전전하거나, 느슨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노매드들이 특별한 이유는, 지금까지 그 어떤 계급에서도 볼 수 없는 특성들, 이를 테면 떠돌이 생활의 자발성과 긍정성,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이들의 대안적 삶은 사회적 그늘로부터 시작되었고, 여전히 낮은 임금과 끊이지 않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로드무비를 보는 것처럼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때론 아름답다.

<노매드랜드>는 인상 깊은 장면들이 정말 많고,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지면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가는 마지막 크레딧에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런 배우들(특히 노매드들)은 어디서 섭외한 것일까 궁금하던 찰나, 캐스팅 목록을 보니 주인공이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의 극중 이름과 실제 이름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 본인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노매드랜드>는 픽션과 다큐멘터리가 오묘하게 공존하는 영화인 것이다. 물론 이 형식 자체는 그렇게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주인공 배우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모습은 연기를 보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럽다.

노마드랜드
노마드랜드

 

<노매드랜드>는 놀랍게도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원작은 노매드라는 새로운 계급을 취재한 동명의 논픽션이다.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책의 영화화 판권을 직접 구입했고, 적절한 감독을 물색해 작품화와 제작을 직접 추진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난 감독이 중국 출신의 클로이 자오였던 것이다. 이들은 영화 제작을 결정한 이후로 함께 직접 노매드 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두 예술가는 같은 여성이기도 한 노매드 ‘린다’와 ‘스왱키’를 만나 영감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원작에서 수많은 노매드들이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도 활약상이 뚜렷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집필된 논픽션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이들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쉬는가, 이들이 여전히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가 현재 미국 사회보장제도의 맹점과 함께 자세하게 묘사된다.

<노매드랜드>는 작품의 형식에서의 변주를 고려하더라도 당분간 나에게 원작의 영화화가 가장 훌륭하게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에서 펀이 보여주는 고독하고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일상들은 논픽션 <노마드랜드>의 실제 인물들에 의해 증언된 것이기도 하다. 책을 나중에 읽었는데, 영화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저자인 제시카 브루더의 문장 또한 유려하고 노매드의 삶에 충실하다.

영화의 펀이 보여주고 있듯, 이들 노매드에게 돌아갈 터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산층으로 적당히 풍족하게 살고 있는 가족이 있으며,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정착한 삶을 꾸릴 수도 있다. 노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이들의 경제적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것도 결코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춥고 불안정한 길을 나선다. 그것은 불가해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또한 부모의 둥지로부터 벗어난 이후 꽤 오랜 시간 마음의 안식처라고 여겨졌던 곳들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지 않은가. 최초이자 최후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들을 속박했던 것들을 벗어 던지고 자유를 영위하며 최소한의 삶을 꾸려간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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