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밥벌이는 32년 차 아사히 신문의 기자 곤도 고타로가 나이 50이 넘어 자신의 식량은 자신이 직접 농사지어 살아 보겠노라는 포부를 밝힌 농부 도전기다.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농부가 아니라 '얼터너티브 농부' 다. ' 얼터너티브 농부'라니 아무말이나 갖다 붙인다고 그 의미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얼터너티브 농부란 전업이 아닌 하루에 단 한 시간만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한다. 하루에 단 한 시간만 농업에 종사하는 농부라니! 요즘말로 저항을 받기에 충분하다. '최소한의 밥벌이'는 뼈속까지 도시남이었던 신문 기자의 '언저리 농부 도전기'다.

신현종 조선일보기자
신현종 조선일보기자

하루 한 시간의 노동으로 자신의 생계를 꾸려나가 보겠다는 초보 농부의 꿈같은 계획은 그를 도쿄가 아닌 저 먼 시골 이사하야에 데려간다. 이사하야는 도쿄에서 50평생을 산 그가 관광으로라도 지나친 적이 없는 정말 오지의 외딴 시골마을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두말하면 입아픈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안된다. 모진 목숨 부지하는 데 품이 들기 때문이다. 돈이 있어야만 먹고 살수 있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누구나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가진 건 없고, 먹고는 살아야겠고, 바라는 삶은 오늘의 현재가 아니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아웃사이더 기자인 곤도 고타로는 멋지게 생각해 낸다.

바로 얼터너티브 농부!! 이름부터 간지가 난다. 절대 전업 농부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 책의 제목에서도 밝혔듯이 '최소한의 밥벌이' 즉, 한 사람이 일 년에 먹고 살 만큼의 쌀농사만 짓겠다는 것이다. '일단 벼농사를 지으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 흰쌀밥을 이제 내손으로 마련하겠다.'는 그의 당찬 포부는 사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현실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현실인식에서 시작되었다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그의 추진력이 일반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손에 쥔 것을 놓기가 어렵다. 더더군다나 일본은 그 어떤 나라보다 동조압력이 강한 나라다. '동조압력'이란 다수의 의견에 따르도록 암묵적으로 강제하는 힘을 말한다. 그런 사회에서의 '평탄하지 않음'은 실로 많은 것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내가 누군데? 나 곤도 고타로야!" 를 입에 달고 사는 그에게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인생에는 늘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가치가 있고, 또 언제나 그것을 실천해온 트릭스터(Trickster 질서교란자, 규범파괴자)들이 있다. 트릭스터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저자에게 어쩌면 손에 쥔 것들을 내려 놓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아무 의욕도 의미도 없는 일을 하며 건강도 삶의 기쁨도 잃어간다, 너무 바쁘고 지쳐서 평소 좋아하던 영화나 책을 즐길 여유도 없다. 피곤한 몸으로 퇴근해 집에서 보는 것이라고는 텔레비젼과 스마트폰뿐. 왜 이렇게 살까? 결국 굶어 죽는 게 무서워서 아닐까? 뒤집어 말하면, 굶어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사람은 쌀만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굶어 죽지 않는다.'

'쌀만 있으면 굶어 죽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절절한 의지의 표현인가! 그에게 인생 말년의 대전제는 굶어 죽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원하는 글쓰기를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도 좋아하는 일만하며 살게 해줄테니 지금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으라고 한다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하물며 사회적 명예를 흠뻑 누리며 살아 온 사람들에게 이런 선택지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말년의 영화를 위해 사회적 규범을 어기거나 온갖 편법으로 자산을 늘리는 비열한들을 너무 많이 보며 살아 왔다

사실 이쯤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얼터너티브 농부 도전기가 오직 글쓰기 시간을 벌기 위한 고민의 발현체만은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높게 평가한다. 내가 일을 제일 잘한다. 그런데 남들은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는다. 나를 그냥 함부로 부려먹고 있다. (중략)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심할 만큼 그릇이 작다. 알지만 별 도리 없다. 특A급으로 째째한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그렇게 일하면 살아가는 데 넌더리가 났다. 난 여태 '열다섯 살의 밤'도 '졸업'하지 못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봤을 이런 고민 끝에 그는 충동적으로 불쑥 인사이동을 요청한다. 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으니 날 보내 달라고. 될 수 있으면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홀로 근무하는 지국으로 발령을 내 달라고 말이다. 다분히 즉흥적이고 실현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엄포성 멘트였다. 그런데 나이 많고 고집 쎈 트릭스터를 다루기가 버거웠던 그의 나이 어린 상사가 곤도의 입 밖에 나온 이 제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 "에이, 왜 이러세요. 선배가 없으면 우리 아사히 신문은 어떻게 하라구요."라는 멘트를 내심 기대했던 그에게 '선배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어렵사리 찾았으니, 최대한 빨리 발령을 내 주겠다'는 상사의 제안은 그의 계획안에 전혀 들어 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미 입밖에 나와버린 제안은 급물살을 타게 되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환송을 받을 수 있을까 싶게 많은 송별회를 치룬 끝에, 그는 이사하야로 향한다. 이사하야로 떠나기 전, 그는 그 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앞날이 불안해 그 좋아하는 맥주도 아무맛이 없었다.'

직접 농사를 지어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꾸려가 보고 싶다고 떠벌렸지만, 그가 계획했던 것은 전업 농부가 아니었다.

'프로가 되면 나는 끝장이다. 어디까지난 글쟁이를 본업으로 살아가기 위해 주식인 벼농사를 짓겠다는 거다. 그래서 하루 최대 한 시간, 이른 아침에만 논에 들어갈 것이다.

그건 결국 농협이나 지자체의 협력을 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든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큰 소리를 치고 본사를 떠나 왔지만 도와줄 인맥도, 땅 한자락도 없이 시골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 돌같은 마음으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뜻밖에 포르쉐 매장이었다.

"포르쉐 주세요"

"... 포르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포르쉐 오픈카로."

...가라앉은 기분을 추스르기 위한 에너지 드링크라고나 할까. 유일하게 아는 외제자 이름을 댔을 뿐이다.

"네 이거 주세요."

"저어...시승은?"

"됐어요. 운전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주세요."

자포자기 상태였다.

위의 짧은 문단이 그의 상태를 잘 말해 준다. 자동차 없이 지낸지 20년 만에 포르쉐 오픈카를 사고(후에 이 포르쉐는 노인이 모는 경차에 모질게 받히고 만다), 늘 입고 다니던 알로하셔츠(그는 기자 생활 중에도 늘 알로하 셔츠를 입었다)도 꼼꼼하게 챙겼다. '농사를 짓는 다고 스타일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얼터너티브 농부다운 발상이다.

최소한의 밥벌이
최소한의 밥벌이

 

이렇게 그는 이사하야로 향한다. 물론 화려한 알로하 티셔츠에 오픈카를 타고 말이다. 그런데 그 곳에 도착하자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전임 지국장이 곤도의 농사 계획을 듣고, 전 나가사키 총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모코라는 여성을 소개해 준 것이다. 도모코의 시댁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의 시아버지는 평생 땅만을 일구고 살아 온 경력 많은 농부였다. 도모코의 도움으로 시아버지를 소개 받은 뒤 그는 무작정 그의 계획을 말하고, 남자 혼자 1년 동안 먹을 쌀을 생산할 수 있는 논을 얻을 수 있는 지 묻는다. 그 말은 들은 도모코의 시아버지는 그에게 말했다.

"신문기자는 넉살도 좋군. 어지간히 해."

스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도 곤도는 자주 그말을 들게 된다.

"장비(농기계)는 사면 비쌀텐데... 사람 손으로는 할 수 없나요?... 빌려주실 건가요?"

"신문기자는 넉살도 좋군. 어지간히 해."

이 후로도 화려한 알로하 셔츠의 농부는 이런 저런 주위의 도움을 받아가며 60평 남짓한 자신의 다랭이 논을 일군다. 그는 말한다.

'시골에 살며 농부가 된다고 근본을 바꿀 수 있나. 내 스타일은 무너뜨리지 않겠다.즐겁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멋지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의미가 없다.'

비가 갠 길 위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면 온 몸이 굳어 저만치 돌아가고, 논에서 나오는 왕우렁이를 너무도 끔찍해 하며 초보 농부 곤도는 하루에 한 시간 남짓 한 시간이지만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

곤도는 이런 자신의 농사 체험을 '알로하 셔츠를 입고 모내기를 해보았습니다.'란 제목으로 아사히 신문에 연재해 독자들의 큰 반향을 얻는다. 그야말로 해피엔딩이 아닐 수 없다. 글이 좋아 향한 시골의 마을에서 얻는 독자들의 환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진짜 원동력이었다.

드디어 가을이 오고 곤도는 대망의 수확을 하게 된다. 무려 85킬로그램! 처음 곤도의 목표는 쌀 한 섬, 즉 60킬로그램을 수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애초 계획의 1.5배에 이르는 훌륭한 결실을 일궈냈다. 저자는 1년 농사에 든 모든 비용을 결산해 보고 그다지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았음에 흡족해 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1년 치 양식인 쌀 60킬로그램을 마트에서 구입한다고 하면 15만원 남짓 밖에 들지 않는다.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그리 효용이 좋은 편 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신문 기자 시절 경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이를 모를 이 없다. 이 책의 원제 또한 '맛있는 자본주의'이다.(실로 이 책에는 자본주의 구조에 대해 분석하는 여러 글들이 나온다) 그가 일년의 농사에서 얻고자 한 것이 비단 자신의 식량 60킬로그램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얼터너티브 농부', 이 새로운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뭔가 틈새를 찾은 듯 유쾌한 감정이 들었다. 농부가 된다고 패셔니스타가 스타일을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원하는 것을 하는데 너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이 책에서 곤도는 우리에게 말한다.

'즐겁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 재미가 의미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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