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찬은(필명)씨의 소설 '오늘의 불쾌지수'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작가 하찬은(필명)
작가 하찬은(필명)

선거관리위원회가 내려다보이는 낡은 다세대주택 옥상 위에 박병환과 나기영 기자가 나란히 벽을 등지고 앉았다. 두 사람은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까만 강아지 한 마리가 시멘트 바닥에 배를 깔고 열심히 개 껌을 뜯고 있었다.

한동안 구름의 흐름을 쫓던 나 기자는 몸을 틀어 병환을 바라봤다. 나 기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병환아! 지금 몇 시간째냐? 마감이 이제 한 시간도 안 남았어.”

병환은 나 기자의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개 껌을 뜯고 있는 강아지의 긴 허리를 쓰다듬었다.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나 기자는 병환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염병할, 됐다. 그만하자’며 일어섰다. 그제야 병환이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을까?”

나 기자는 다시 자리에 앉아 병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달래듯 말했다.

“병환아, 우린 지금 범법행위를 저지르려는 게 아냐. 법대로 하는 거지.”

병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 기자는 가만히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는 병환의 손을 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병환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너는 그냥 후보 등록만하면 되는 거야.”

나 기자가 ‘깜순아’하며 강아지 허리를 쓰다듬었다. 나 기자의 손길이 낯설었는지 강아지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깜짝 놀라 강아지 허리에서 손을 뗀 나 기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병환을 보며 말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오늘부터 넌 얘 후견인이 되는 거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넌 최초로 선거에 출마한 강아지 후보 후견인이 되는 거고, 나는 특종 하나 건지는 거야.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나 기자의 끈질긴 설득에 병환도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기자는 병환의 심경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병환아, 지금 네 꼬락서니를 봐. 넌 이제 법대생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눈칫밥이나 먹는 백수라고.”

병환은 나 기자의 말에 울컥했다.

“다 맞는 말인데, 친구라는 놈이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겠냐?”

잔뜩 풀이 죽은 병환의 말에, 나 기자는 거침없이 몰아붙였다.

“병환아! 기회는 한 번 뿐이야.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병환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지만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나 기자는 이때다 싶어 쐐기를 박았다.

“야! 모르긴 몰라도 아마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 이슈가 될거다. 그리고 너 임마! 안 군수 삼선하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다며?”

 ‘안 군수’라는 말에 병환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정말, 안 군수 떨어뜨릴 수 있을까?”

나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병환은 나 기자의 손을 잡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한 번 가보자. 법대로 한다는데 잡아가진 않겠지.”

병환은 강아지를 번쩍 들어 올려 옆구리에 끼고 선거관리위원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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