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슬프다!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프롤로 부주교가 노트르담 대성당과 인쇄된 책을 번갈아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여기서 ‘이것’은 책을, ‘저것’은 노트르담 성당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문학이 건축을 죽인다는 얘기다.

문맹률이 높고 책이 희귀했던 중세에는 성서의 장면들을 건축물에 그림과 조각 등으로 새겨 누구나 그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인쇄술이 개발되고 서민들에게도 책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위고가 부주교의 입을 빌려 건축술은 문학에 밀려 쇠퇴하리라고 말한 이유다. 그렇다면 정말로 건축술의 시대는 저문 것인지, 건축사무소 ‘A0100Z’의 소장 성상우 씨와 함께 고민해 봤다.

 

'A0100Z' 소장 성상우 씨

 

성 씨가 처음부터 건축가를 꿈꿨던 건 아니다. 원래 경제학과였던 그는 어학연수를 갔던 일본에서 건물들을 보고 건축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사실 그때 하고 싶었던 건 건축보다는 파괴였다. (지저분한 건물들을) 젊은 패기로 치워버리고 싶더라”며  “건물을 짓는 걸 알면 부수는 것도 알 수 있겠다 싶어 건축과에 들어갔더니 교수들이 희한하다고 했다”고 회상하며 웃었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파괴보다는 건물을 짓는 데 관심이 기울어 건축사무소의 소장까지 됐지만 성 씨가 초심을 아예 잊어버린 건 아니다. 당시의 흔적은 그의 별칭으로 남아 있다. 그는 "'파괴'가 내 호(號)다. 음성학적으로는 파괴지만 '씨 뿌릴 파' 자에 '덩어리 괴' 자다”며 “여기서 파괴는 파괴를 위한 파괴, 해체를 위한 해체가 아니라 기존의 관념 같은 틀을 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 씨가 떠오른 생각을 적고 그리는 수첩
성 씨가 떠오른 생각을 적고 그리는 수첩

 

주택 건축의 매력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시하는 물질을 만들어주는 데 있다는 성 씨가 항상 강조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문턱이 닳는 집’이다. 그에게 문턱은 ‘사회적 거리’고, 공공은 ‘내 것을 나눠 함께 관리하고 청소하고 받드는 것’이다. 그는 “문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중간지대인데, 그 문턱을 길게 늘이면 공적 공간이 늘어나 ‘공공’이 된다”며 “나는 나이면서 우리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짓고자 한다”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뮤직비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 라디오 방송은 죽을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새로 나온 것이 기존의 것을 무너뜨릴 거라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라디오의 수요는 높다. 일례로 라디오 방송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지고 있다. ‘이것(문학)이 저것(건축)을 죽인다’라는 위고의 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 씨는 “라디오와 비디오가 서로 다른 매력이 있듯 문학과 건축도 그렇다"며 “'문학이 건축을 죽인다'는 말은 아마 이 시대에서는 ‘자본이 건축을 죽인다’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고찰했다. 

건축이 라디오처럼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로 그가 제시한 것은 포스트 코로나에 맞는 설계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시대상을 반영하는 게 바로 건축이기에 그렇다. 성 씨는 “이 시대에서는 ‘호흡이 맞는 집’을 지향한다”며 “친환경은 몸을 감싸는 주변과 친하다는 개념, 사회적 거리는 우리를 감싸는 사물과 친해지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라고 본다. 집이 이런 친환경을 위한 거점이 돼야 한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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